‘떴다방’ 막기 전에, 우리가 먼저 돌아봐야 할 것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9월 06일
임재성 장수군의회 의원
어르신들에게는 그저 모처럼의 재미있는 외출이다. 흥겨운 노래에 맞춰 손뼉 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흐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화장지 몇 묶음, 라면 몇 봉지 같은 사은품도 손에 쥐어진다. 돈 한 푼 내지 않아도 사람들과 어울려 웃을 수 있으니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자연스레 발길이 향한다. 농촌지역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문판매, 이른바 ‘떴다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무료 공연과 즐길 거리를 경험한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은 소일거리 찾던 친구에 지인까지 데리고 다시 이곳으로 구름처럼 모여든다. 방문판매업체가 본격적인 판매에 나서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효과를 확실히 알기 어려운 건강식품부터 고가의 안마기, 심지어 수백만 원대 크루즈 여행 상품까지 내놓으며 어르신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그 비싼 걸 왜 샀느니 하며 부모-자녀 간 갈등이 깊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거금을 지출하거나, 구매할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업체가 폐업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린 후에는 피해보상 받을 길이 더 막막해진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또한 만만치 않다. 지역 내에서 순환되어야 할 돈이 외지 업체로 빠져나가며 가뜩이나 어려운 농촌 상권을 갉아 먹기 때문이다. 필자가 13년 전 장계면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았을 때도 비슷한 일로 시끄러웠다. 장계를 비롯해 계남·계북·천천 등 장수 북부지역 이장협의회, 주민자치위원회 등 여러 사회단체가 뜻을 모아 철수를 요구했지만, 업체는 완강히 버텼다. 주민들과 함께 해법을 고민한 끝에 출입구를 직접 몸으로 막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어르신들에게 “왜 못 들어가게 하느냐”는 항의와 함께 거친 말을 듣기도 했다. 영업방해 신고를 받은 경찰까지 출동하며 데모를 방불케 하는 육탄전까지 벌이는 등 보름 넘게 대치가 이어졌다. 결국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워진 업체는 당초 계획했던 시기보다 일찍 철수했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방문판매업체가 최근 장수군 읍내에 나타났다. 양손 가득 사은품을 들고 ‘떴다방’을 나서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지역사회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아무리 뜯어말려도 이곳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어쩌면 그분들이 원했던 것은 고가의 영양제나 안마기가 아니라,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하루였을지 모른다.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웃을 수 있는 온기가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방문판매 문제는 개인의 소비를 넘어 어르신 복지, 가족관계, 소비자 보호, 지역경제가 복합적으로 연결된 사안이다. 더 이상 합법적 영업활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방치하고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에 필자는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선제적 점검과 정보 공유체계 구축이다. 새로운 영업장이 어르신들을 모집하고 상품을 판매하는 정황이 포착되면 피해 신고가 들어온 뒤에야 움직일 것이 아니라 판매방식, 신고·등록 여부, 계약서 교부와 청약 철회 안내 등 관계 법령 준수사항을 사전에 점검하는 것이다. 경로당, 읍·면사무소, 이장단, 주민자치회 등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확인된 사실과 피해 예방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하는 체계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둘째는 소비자 피해 예방 교육의 실효성을 높이는 일이다. 고가 상품 계약 시 확인 사항, 청약 철회 및 계약 해지 절차, 피해 발생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 안내 등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반복적으로 알려야 한다. 특히,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효능이나 효과에 대한 과장광고를 구별하고, 제품표시와 계약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셋째는 어르신 여가 프로그램의 질적인 확장이다. 복지관, 경로당,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을 더욱 다양화하되, 일방적 공급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묻고 반영해야 한다. 어르신 스스로 ‘가고 싶다’라고 느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미 많은 지자체가 조례 제정, 예방교육, 대체 여가 프로그램 등 다양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나주시 고령소비자 보호 및 방문판매 피해 예방조례’, ‘통영시 방문판매 피해 예방 조례’, ‘원주시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조례’를 비롯해 ‘충주시 시립청춘떴다방’과 같은 노인복지관 연계프로그램 등 참고하기에 좋은 사례들이 많다. 이제는 우리도 행정이 먼저 살피고, 지역사회가 함께 대응하며, 의회가 감시하고 점검하는 대응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다. “어머니, 그런 곳에 좀 가지 마세요”라고 나무라기 전에, “아버지, 그런 거 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라고 핀잔을 주기 전에, 우리가 모두 함께 돌아봐야 할 것이 있다. 떴다방이 출몰할 때마다 13년 전처럼 주민들이 몸으로 막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9월 06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