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시인의 눈> 이삭줍기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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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와 장마가 슬며시 자리를 내어준 뒤 하늘이 먼저 키를 껑충 높이더니 산뜻한 바람이 가을꽃을 앞세우고 왔다. 거침없이 붓을 놀리는 가을의 화폭엔 나날이 가슴 설레는 빛깔들로 채워져 갔다. 들판엔 황금 물결 넘실대고 감나무엔 주황색 꽃불을 켠 듯 주렁주렁 감을 매달았다. 뒷산에선 알밤이 툭툭 벌어지고 바람에 억새꽃이 수런거렸다. 코스모스, 백일홍, 구절초, 들국화, 이름 모를 풀꽃까지 줄줄이 피어 가을 산, 가을 들판을 채웠다. 한가위 둥근달이 이지러지면서 들판은 듬성듬성 빈자리를 만들더니 짱짱한 나무마저 서둘러 발밑으로 잎새들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나무도 잔디도 들풀까지도 모두 가을빛으로 물들어가고 하늘과 땅 사이는 더욱 멀어졌다. 내 유년의 추억 속엔 이맘때 벼 베기가 끝난 논에 아이들이 이삭줍기하던 풍경이 남아있다. 지금처럼 기계로 베고 그 자리에서 알곡은 알곡대로 훑어가고, 볏짚은 볏짚대로 거두거나 바닥에 깔아버리지 않고, 낫으로 나락을 베고 손으로 묶던 시절이니 논에 떨군 이삭이 제법 있었다. 동네 언니들을 따라가 놀이처럼 주워온 벼 이삭을 가져오면 어머니는 이젠 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검정 고무신에 진흙을 잔뜩 묻히며 떨어진 나락 모가지를 줍고, 움푹움푹 들어간 구멍을 짚어내서 우렁이를 캐던 즐거운 놀이는 여러 번 반복되었다. ‘잊혀진 계절’과 ‘10월의 어느 멋진 날’의 노래가 입안에서 맴돌고 까닭 없이 마음이 시린 이맘때가 되면, 벼 베기를 마친 들판에서 이삭을 줍던 고운 추억이 새록새록 그리워진다. 빈들에 살비듬처럼 떨어져 있던 이삭~ 다시 이삭을 주워야겠다. 봄부터 숱하게 뿌리고 온 생각의 씨앗들이 제 자리를 잘 찾아갔는지, 조심성 없이 흘려버린 말과 생각의 파편들이 함부로 나뒹굴고 있지나 않은지 허리 굽혀 이삭줍기를 해야겠다. 일없이 조급했던 마음 가지런히 빗질도 하고,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로 답답하고 쓸쓸했던, 어쩌면 먼지라도 두툼하게 앉았을 사유의 골방에도 등불 하나 환하게 밝혀야겠다.
/전재복 시인 전북시인협회 이사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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