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 공감, 톡톡! 현충시설! 어디까지 가봤니?
김제시 장화동 정화암 생가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3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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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화암 선생(鄭華岩, 1896. 09. 14. ~1981. 10. 21)의 본명은 정현섭(鄭賢燮)으로 자는 윤옥(允玉), 호는 화암(華岩)으로 전북 김제 출신입니다. 정화암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1919년 3.1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1920년 8월 미국 의원단의 한국 방문 당시 일본의 침략상을 폭로하는 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되자 1921년 10월 중국 북경((現)베이징)으로 망명해 구국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24년부터는 상해에서 이회영, 신채호 등과 교유하며 조국의 광복 운동은 무력투쟁의 방법에 의하여 쟁취해야 한다고 판단, 폭탄 제조 기술을 습득하고 군자금 확보 방안을 강구하는 등 지속해서 무력투쟁 활동을 했습니다. 1936년 1월부터는 남화연맹의 기관지인 ‘남화통신’을 매월 발간해 항일의식을 고취시켰으며, 1937년 9월에는 중국인 무정부주의자를 규합하여 ‘중한청년연합회’를 결성하는 한편, ‘항쟁시보’를 발간해 한·중 양국민의 공동투쟁을 도모했습니다. 이후 임시정부의 시책에 협조하여 임정을 지원했으며, 1940년부터는 상해 방면에서 잠복 활동을 하며 광복군의 현지 책임자로서 주중 미 공군에 미·영 포로수용소의 소재지를 확인, 보고하는 등 정보활동에 기여했으며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에는 야당 정치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8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 선생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3년 11월 13일 정화암 생가를 현충시설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공=서부보훈지청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3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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