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문학산책] 망구(望九)의 버킷 리스트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3월 24일
|
 |
|
| ⓒ e-전라매일 |
| 나이가 든 사람으로부터 흔히 듣는 말이 있다. 60대에는 세월이 시속 60km로 달리는 것 같더니, 70대가 되니 70km로 달리는 것 같다고 한다. 이는, 세월이 덧없음을 아쉬워하는 표현이지만 흐르는 세월의 속도는 일정하다. 다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에 대응하는 신체의 민첩성이 떨어져 매사에 무기력하고 둔해질 뿐이다. 그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으레 입버릇처럼 하는 소리이다. 망구(望九)가 되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주위에서 사라져가는 지인들의 소식을 들으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애써 무덤덤한 채,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천천히 걸어 보지만, 자기 눈앞에 종착역이 훤히 보이는 것 같다. 발길을 돌리며 외면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없다.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보면, 조금 더 힘을 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만 더할 뿐,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내구연한만을 채우며 뚜벅뚜벅 종착역을 행해 걷고 있다. 우물쭈물하다가 그럴 줄 알았다고 후회한 사람의 묘비명을 떠올리고, 다른 출구전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게다가 모자까지 푹 눌러쓰면 사람을 만나도 얼굴을 쉽게 알아볼 수 없다. 뒤에서 보면, 젊은이인지 노인이지 식별하지 못 할 거라 생각하고, 보폭을 넓게 하고, 팔을 앞뒤로 휘두르며 빨리 걷는다. 노력하는 자에게 길이 있는 법이라고 자위하며, 딴에는 뒤쳐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걷는다. 그런데 아뿔싸. 저만큼 뒤에 따라오던 이가 앞지르고 멀어져가는 걸 보면 역시 어쩔 수 없는 노인임을 자각한다. 웰빙(well-being)보다는 웰다잉(well-dying)이 더 좋다는 시쳇말은 유통기한이 다한 노인들을 회유하기 위한 ‘허울 좋은 하눌타리’ 같은 속담에 불과함을 이내 깨닫는다. 뿌리줄기로만 번식하는 대나무는 더 이상 번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생을 마감한다. 공해가 극심한 지역의 소나무도 환경이 악화되어 죽음을 감지할 때 유난히 많은 솔방울을 만들어 마지막으로 종족을 퍼뜨린다. 이와 같은 현상을 생물학적 용어로 ‘앙스트블뤼테’라 한다. ‘불안 속에 피는 꽃’이란 뜻이지만, 최후의 순간까지도 무기력하게 물러서지 않고 사력을 다해 생명을 유지·계승하는 모습이다. 그런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말하면 노망한 망구의 과욕일까? 비록 망구의 버킷 리스트라고 폄하해도 상관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지막 인생을 불사르는 멋진 작품 하나쯤 갖기를 원하지 않은가. 감히 지극히 높으신 분의 말씀을 흉내 낼 수는 없지만, 깜냥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보기에 참 좋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희근 전주문협 회원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3월 24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