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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요일별 특집

재경전북도민회 수석 부회장 박종길 전 문체부차관의 발자취

7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86년 서울아시안게임 출전
종목은 25m 속사권총으로 금메달 3개, 은메달 6개, 동메달 3개 따
국가대표 은퇴 뒤,사격 국가대표 감독 역임· 태릉선수촌 촌장으로 지내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근무한 기간은 2013년 3월부터 9월까지며
현재 재경전북도민회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박찬복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3월 25일
ⓒ e-전라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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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1980년대 한국 사격의 간판스타

박종길 재경전북도민회 수석 부회장은 1970~1980년대 우리나라 사격 간판스타였다. 국가 대표로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 출전해서 금메달 3개, 은메달 6개, 동메달 3개를 땄다. 종목은 25m 속사권총이다.
박 전 차관은 올림픽에도 두 차례 국가대표 사격선수로 출전했다.
이런 경력으로 따져볼 수 있듯이 박 전 차관은 1970~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근거리 권총 사격의 일인자였다.

■ 군 장교를 꿈꾸던 익산농림고 출신

박 전 차관은 익산시 출신이다. 1946년 익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탯자리가 묻힌 곳의 당시 행정구역은 익산군 북일면 신용리다.
박 전 차관은 6남매 중 장남이다. 선친은 “경우가 바른 사람이 되라”고 늘 강조하셨다.
박 전 차관은 어려서 교사를 꿈꾸었다. 전주사범학교가 없어져 이리농림고에 진학했다.
이리농림고 시절, 꿈이 바뀌었다. 교사가 되겠다던 동심의 꿈은 사라지고, 군 장교를 꿈꾸게 되었다.

■ 해병대 장교, 대위로 전역

박 전 차관은 이렇게 말한다.
“어려서 수줍음도 많이 탔고, 사내대장부다운 기질도 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성격도 좀 고치고, 남자다운 용맹도 갖추려고 해병대 장교에 도전했습니다.”
박 전 차관은 1965년 해병대에 입대했다. 소위로 임관했다. 소위 임관 때, 대통령상을 받았다. 생도 중 1등을 한 것이다.
특히 사격에서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았다.
“저는 군대 생활이 참 즐겁고 맘에 들었습니다. 해병대 장교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렇지만 군대 생활은 제 체질에 맞았습니다.
해병대 장교로 10년을 근무했습니다. 대위로 전역했습니다.”
■ 해병대 사격왕, 국가 대표 사격선수가 되다
해병대 소대장을 지낸 바 있는 박 전 차관은 군 복무 시절, 해병대의 사격왕이었다. 해병대 전국 사격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
1970년, 박 전 차관도 월남전에 참전할 처지였다. 당시 군 장교는 대부분 월남전에 참전하던 때였다. 월남전 파병을 위한 교육을 받은 뒤, 부산에서 월남으로 출항하는 배에 승선하려던 때다.
누군가 박 전 차관을 호출했다.
“박종길 중위 어디 있나?”
“제가 박종길인데, 왜 그러십니까?”
“박 중위는 월남전 참전이 중요한 게 아니니 배에 오르지 마라!”
박 전 차관은 황당했다. 군인들을 싣고 월남으로 떠나려는 배가 곧 출항할 참인데, 승선하지 말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박 전 차관은 호출한 사람을 따라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 오른 군용차는 태릉에서 멈춰 섰다.
군복을 입고, 배낭을 멘 해병대 중위 박 전 차관의 부임지는 태릉선수촌이었다. 태릉선수촌에다 군장을 푼 뒤, 박 전 차관은 이런 소리를 들었다.
“제가 월남으로 떠나기 직전에 호출돼 영문도 모르고 태릉선수촌에 도착해서 들어보니,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더군요.
글쎄 청와대 경호실에서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유치했는데, 사격선수를 찾기 힘들어 군인들을 차출했다는 겁니다.
당시 우리나라엔 군대 아니고는 사격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군대 밖에서 사격장을 찾아볼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국제적인 사격대회를 유치했으니 청와대에서도 골머리가 아팠던 모양입니다. 그 해결책으로 각 군에서 총을 제일 잘 쏘는 군인들을 선발해서 태릉선수촌에 모았던 겁니다.
국제적인 규격의 사격장도 신축하구요.”
해병대 사격왕 박 전 차관은 졸지에 국가대표 사격선수가 됐다. 그해 즉, 1970년 가을에 열린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에서 박 전 차관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런 쾌거를 이룰 수 있던 잠재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사격을 잘 하려면 물론 시력도 좋고 체력도 좋아야 되겠지요. 하지만 관건은 정신력입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끈기도 있었고, 남에게 지기도 싫어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기계체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청소년기의 삶이 사격선수의 기질과 체력에 딱 맞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다 저는 해병대 장교였습니다. 그러니 해병대 사격왕이 육군 사격왕한테 뒤질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태릉선수촌에 불려 온 다른 군인들 보다 세 배 네 배 훈련을 했습니다. 밤을 새워 연습한 날도 많습니다. 결국엔 대한민국 최고의 국가대표 사격선수가 되었습니다.”

■ 청와대 경호실 최고의 총잡이

‘총잡이’란 총을 잘 쏘는 사람을 말한다. 특히 권총을 잘 쏘는 사람을 이른다.
1970년,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박 전 차관은 해병대에 복귀하지 않고, 태릉선수촌에 남아 국가대표 사격선수로 활동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이 발생했다. 그 무렵, 대한민국 최고의 속사권총 총잡이인 박 전 차관은 청와대 경호실로 들어간다.
몇 년 뒤, 박 전 차관은 청와대 경호실에 나왔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오던 당시, 저는 이런 의문을 가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속사권총을 제일 잘 쏘는 제가 왜 대통령 근접 경호 팀에서 물러났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더니 이유는 두 가지가 있을법 했습니다. 하나는 제가 키가 작은데, 그게 이유가 될 수 있었고, 또 하나는 제가 호남 출신인데,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돼 10‧26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때 제 동료들도 죽었습니다.”
박 전 차관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 차례의 죽을 고비가 있었다고 말한다.
“제가 월남전에 참전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해병대 장교가 월남전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만약 제가 10‧26사태 때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망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10‧26사태 때,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했던 제 동료들은 죽었습니다.
제가 월남전에 참전하지 않아 살아남는 데는 총을 잘 쏜 덕분이구요. 10‧26사태 직전에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온 것은 아무래도 고향이 호남이라는 점과 조상님들의 보살핌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해병대 전군 사격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함으로써 인생이 바뀐 박종길 전 차관. 박 전 차관은 월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배에 승선하던 중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에 참가할 국가대표 사격선수로 발탁 된 뒤, 피나는 노력으로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에서 많은 메달을 땄다.
국가대표 은퇴 뒤, 박 전 차관은 사격 국가대표 감독도 역임했고, 태릉선수촌 촌장도 지냈다.
2011년 1월, 국가대표 선수들의 요람인 태릉선수촌 촌장을 맡은 박 전 차관은 이듬해인 2012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선수단의 총감독이었다.
우리나라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역대 원정대회 최고 성적인 종합 5위에 올랐다. 획득한 금메달은 모두 13개였다.
“태릉선수촌 촌장으로 런던올림픽을 준비하며 저는 선수들을 배려의 리더십으로 관리했습니다. 간혹 선수들이 늦잠을 자도 “어이고 축하한다. 그래 얼마나 힘들면 늦잠을 잤니?”라고 용서하고 격려해 주며, 선수들이 언제라도 찾아와서 어려움과 고민을 털어놓는, 찾아오고, 다가오는 촌장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박 전 차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근무한 기간은 2013년 3월부터 9월까지다.
박 전 차관은 현재 재경전북도민회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박찬복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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