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문학산책] 4월이 간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5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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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잠을 깬다. 눈을 뜨지 않고 뒤척인다. 푹 잤다는 결론은 없다.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는 무거운 의식, 나는 점점 쇠약해지고 있는가. 신체에 찾아오는 통증의 정도를 스스로 진단해봤자 무슨 필요가 있을까. 나잇값으로 오는 신호이려니, 체념을 앞세운다. 그 마음, 별로 쓰지도 않다. 눈을 뜬다. 전자벽시계의 숫자가 두 개로 보인다. 원래보다 10여분 앞당겨 놓았지만 천천히 느려져 어느 날부터는 원 시각을 뒤따라간다. 시간의 흐름이 빨라지는 것 같지만 실은 시계가 느린 것, 그 30년 묵은 낡은 시계가 벽에 걸려있다. 저 시계나 내 존재의 이유나 다를 바 없다. 두어 번 눈을 끔벅거리다가 정확한 시간을 읽는다. 불편하다. 몇 해 전 백내장 수술을 했지만 눈 속 이물감은 여전하고 사물들은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다. 병원을 다시 찾았더니 눈물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눈물은 액체여만 하고 눈으로만 흘려야하는가. 세월 따라 가슴으로 흐른 눈물이 육체의 눈물마저 마르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눈에 눈물이 부족하단다. “엄마 눈이 슬퍼 보여.” 며칠 전 딸아이가 아내에게 했던 말이었다. “네 아빠가 더 슬퍼 보인다.” 아내가 그 말을 되받았다. 나는 그때 슬퍼 보인다는 눈으로 웃었다. 눈물 말라 뻑뻑해진 눈으로 웃었다. 그 생각, 뻑뻑한 눈으로 시계를 본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었다.
벚꽃이 졌다. 여느 꽃과 달리 벚꽃의 아름다움은 늘 탄식을 부른다. 그 탄식은 낙화의 아름다움까지 이어진다. 한꺼번에 아름답게 지는 낙화의 의미를 어떤 나라의 무사들은 민족성으로 끌어안았다. 그 섬뜩한 차용(借用)과 용렬함에 속아서는 안 된다. 꽃이 민족성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의 살던 고향에 복숭아꽃 살구꽃’보다 훨씬 많은 왕 벚꽃의 원산은 우리나라다. 꽃은 꽃일 뿐이다.
사진엽서 몇 장 만들어 본다. 자작엽서다. 그러나 누구에게 편지를, 누구에게 엽서를 쓸 것인가. 내 자잘한 일상을 전할 용기도 이젠 사라지고 없다. 그 대상도 이젠 내 마음에서 하나 둘 떠났다. 못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편지를 의례로 대응한 일들이 잦아졌다. 의례의 편지는 말 그대로 의례일 뿐이다. 내가 한때 썼던 편지는 의례가 아니었다. 날마다 토했던 그 언어들은 삶의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한 때 내 편지를 기다리던(?) 그 많았던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내 편지로 책을 내겠다던 종수형도 가셨고 광신이도 갔다. 공교롭게도 성이 같았던 두 사람. 그 별렀음이 독이 되었을까. 그 빛바랜 언어들은 지금쯤 의미 없이 지워졌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만약 그때의 언어들을 지금도 주절거리고 있다면? 사랑은 웃기고, 눈물은 찌질하며, 한숨은 바보 같고, 고독은 철없기 짝 없음을.
4월, 4월이 간다.
/선산곡
전주문협 회원
前펜클럽 전주지부 회장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5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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