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시인의 눈] 진정한 봉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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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를 막론하고 단체장을 뽑는 시기가 되면 아무나 할 수 없는 봉사의 자리라고 말하면서도 그 자리를 오르려고 그리고 지키려고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모습을 보이곤 한다. 장기간 그런 자리를 맡아온 어느 지인은 모임 때마다 자기의 업적을 늘어놓기에 침이 마른다. 물론 일을 잘하는 능력과 열정을 가진 분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임명제이기에 윗선에서 지명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것을 은근히 표현하는 게 아마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 지인은 은퇴 후 각종 단체의 장을 섭렵하며 강의로 봉사하고 다녔다. 그런데 코로나로 방에서 세월을 낚고 있다며 봉사 활동도 이제는 나이와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아 쉬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니 공석이 된 어느 단체장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도와 달라는 경쟁자의 부탁은 아랑곳없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자리가 운영의 활동비로 수천만 원을 지원받는 단체가 아니어도 그렇게 불을 켜고 욕심을 낼 수 있었을까, 만약에 자기의 주머니를 털어야 봉사하는 자리라 해도 그렇게 발 빠르게 움직였을까 하는 괜한 생각을 해본다. 도랑 치고 가재도 잡으면서 봉사라는 말을 남발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인지 씁쓸하다. 진정한 봉사의 뿌리는 고통과 수모를 감당한 십자가의 신의 죽음일 것이다. 그 복음을 위하여 절두산에서 참수당한 선교사들. 아프리카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나 소록도에서 나환자들에게 젊음을 헌신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그리고 테레사 수녀일 것이다. 그들은 부나 명예나 젊음이나 목숨을 한 줌의 흙과 맞바꾼 진정한 신의 제자들로 봉사와 희생의 뿌리인 것이다. 물론 누구나가 그런 삶을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요구할 권리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성자일 수는 없지만 작게는 가정을 지키면서도 조금씩만 손해 보고 양보하며 한 손이 하는 것을 다른 손이 모르게 이웃을 배려하면 그렇게 요란한 헌신과 봉사를 내세우지 않아도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최정호 시인 전북시인협회 이사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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