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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시인의 눈] 남고산성에서 만난 걸음의 미학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11월 25일
ⓒ e-전라매일
얼마나 설렜던가! 남고산성을 오른다고 생각하니. 몸의 컨디션도 좋고 늦가을 날씨도 좋다. 전주의 속살 남고산성을 만나기 위해 천경대 코스로 향했다. 천경대의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꽤 가팔랐다. 고된 산행 뒤에 맛보는 이 짜릿한 전경. 천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는 천경대. 전주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한 대목이 스쳐 지나간다.
‘먹을 한 점 찍는 사이는 눈 한번 깜박이고 숨 한 번 쉬는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눈 한 번 깜박이고 숨 한번 쉬는 사이에 벌써 작은 옛날 작은 오늘이 돼버린다. 이처럼 찰나에 불과한 세상사에서 이름을 날리고 공을 세우겠다고 욕심을 부리니 어찌 서글프지 않겠는가?’ 그렇다. 천경대 저 멀리 바라다보이는 전주 전경 속에서는 아등바등 욕심을 채우며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산바람이 머릿속을 장쾌하게 수선한다. 천경대에서 내려가는 길은 산책로처럼 편안하다. S자형의 고운 성벽을 바라보면서 옛 선조들을 떠올려본다. 산성을 축조하느라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 그 노고와 죽음 앞에 숙연해진다. 내 발길은 가을 낙엽이 쌓인 길을 즐겁게 걷고 있다. 상쾌한 바람과 아름답게 물든 단풍의 하모니가 마치 가을 교향악 같았다. 수북이 쌓인 낙엽 위에 앉아서 사색에 잠기다가 나도 이처럼 낙엽이 되겠지 하는 생명의 유한성을 잠시 생각하다 다시 털고 일어서서 길을 재촉한다. 전주의 또 다른 속살 관성묘로 향한다.
관성묘는 중국 후한의 장군이었던 관우를 무신으로 받들어 제사하는 사당이다. 사당 안에는 관우의 초상이 있고 촛불이 여러 개 켜져 있다. 샤머니즘의 분위기가 훅하니 느껴졌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수호해 달라는 뜻으로 관우의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전란의 위기 속에서 나라를 지키려는 절박한 마음이 모인 사당 같았다.
나는 이른 아침 걷는 운동을 한다. 완산 체련공원에서 만보 이상을 걷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경쾌함을 맛본 지 몇 달 돼간다. 두 발로 걸을 때가 참 좋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고 걸으며 땅과의 발 터치가 좋다. 사람은 태어나서 두 발로 걷기 시작한다. 일생을 길 위에서 보내다가 죽음 또한 길 위에서 맞이하면 행복하다고 한다.
나도 열린 공간에서 한없이 육체를 움직이다가 생을 마치기를 소망한다. 삶이 길이 되고 또 새로운 삶으로 변주되는 유목적 여정을 열어가기를 희망한다.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존재한다.’는 샤르트르의 말처럼, 오늘의 남고산성 길은 그런 날을 점찍는 설렘이 가득한 날이었다.

/강명수 시인
전북시인협회 총무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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