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친정엄마 100번 만나기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1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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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년에, 어머니 100번 만나기 계획을 세워 놓고 있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지인이 우울한 표정으로 민망해 했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무심하면 부모를 일 년에 100번을 못 만나서 계획까지 세워 놓고 법석을 떠는 걸까. 살짝 비웃기까지 했다. 일 년에 왜 100번을 못 만나는 걸까. 그러나 그게 얼마나 무책임하고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얼마 후에 깨닫고 깊이 후회했다. 365일에 100번은 쉽고 간단할 줄 알았던 내 어리석고 짧은 생각 탓이었다. 그리고 막막했다. 일주일에 네 번은 엄마를 만나야 하는데 한 달에 네 번도 어려웠다. 지인의 우울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한 달에 2번, 일 년에 24번, 5년에 120번, 5년 후엔 94살. 과연 그때까지 엄마는 건강하게 살아 계실까. 그리고 난 정확하게 한 달에 두 번씩 엄마를 만나러 갈 수 있을까. 갑자기 엄마를 100번도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 어지럽고, 머리 아파” 친정엄마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가물가물 했다. “왜? 엄마 무슨 일이야?” “나 백신 2차 맞고 왔어” “세상에!” 내가 백신 맞고 두통과 몸살로 한 달 넘게 고생한 터라 그 고통이 어떤지 아는 나로선 우선 화부터 났다. 백신을 맞으려면 병원에 같이 갔어야지 왜 혼자 가셨을까. 하긴 1차 접종 때 순조롭게 넘어갔다고 자랑하듯,“ 늙은 나도 괜찮은데 젊은 니가 왜 근다냐” 하시며 내 걱정만 하시더니 2차 때도 괜찮을 줄 알았나 보다. 무슨 일이든, 걱정하지 말라며 혼자 하려는 아집과 무모함에 때때로 일을 크게 만드는 친정엄마가 아니었던가. 갑자기 불길한 생각에 아득해졌다.
친정으로 가는 길이 멀고 깊었다. 본래 가까운 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더디고 애 터지는 길은 더욱 아니었다. 운전 못 하는 내가 오늘처럼 무능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산만하게 운전하는 택시기사가 야속했다. 별 중요하지도 않은 대화를 이어가며 유유자적 가고 있는 기사의 몰상식에 너무 화가 났다. 마음도 어지러운데 남의 대화 내용을 다 듣고 가야 한다는 게 더욱 참을 수 없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끝내 참은 건 엄마의 안전을 기원하는 선한 마음이 나를 말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정엄마는 침대에 누워서 바쁜데 뭐하러 왔냐며 손사래를 치셨다. 아까와는 달리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타이레놀 두알 먹었더니 좀 나아졌다. 바쁜데 뭐하러 왔냐. 1차 때는 괜찮았는데 이상하다. 외로움 탓일까? 침대에서 내려온 엄마는 끝없이 얘기하고 내게 말을 걸었다. 위급했던 전화 속 목소리를 생각하면 어이가 없었지만, 엄마의 안전함이 다행스러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베란다의 반들반들하고 싱싱한 초록의 화초들을 보니 건강한 엄마를 보는 듯 안심이 됐고, 정돈된 집안은 엄마의 건재함이 느껴져 기뻤다. 엄마는 전설 같이 먼 옛날 일을 어제 일인 듯 자세하게 얘기했다. 그 선명한 기억들은 엄마의 푸른 날들이기도 했는데, 힘들고 고생스러웠어도 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던 것 같다. 짜장면을 시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여전히 간짜장을 좋아하셨다. 간짜장 잘하는 동네의 오래된 중국집 전화번호로 직접 주문도 하셨다. 사람이 그리워서 몸살이 나셨던 것일까. 엄마는 아픈 것 같지 않으셨고 식욕도 좋으셨다. 너무 많다고 하시면서도 짜장면 한 그릇을 남김없이 다 드셨다. 아무렴 어떤가. 혼자 끙끙 앓지 않고 소리쳐 외롭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집을 나서는 나를 따라나서며 엄마는 연신 고맙다. 고맙다. 바쁜데 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이게 고마운 일인가. 부모와 자식 간에 이런 게 고마운 일이 돼버린 세상이 민망했다. 아니, 이런 소리가 당연한 듯 부끄럽지 않은 내가 더 부끄러웠다. ,조심해라, 엄마 목소리였다. 엄마네 6층 베란다를 올려다보니 엄마가 손을 흔들며 창가에 서 있었다. 나는 어서 들어가시라고 손사래를 쳤다. ‘조심해서 가!, 엄마가 아쉬운 목소리로 애달프게 소리쳤다. 한 달에 4번, 1년에 48번, 2년에 96번, 2년 후면 91살. 다른 일을 줄이고 주말마다 엄마를 보러 간다 해도, 2년에 100번을 못 만난다. 좀 더 시간을 내야 할 것 같다. 내 무심함에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100번을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에 진저리를 쳤다. 돌아가시기 전, 나는 100번 아니, 천 번이라도 엄마를 만나야 한다. 엄마! 부디 건강하셔서 나랑 천 번도 더 만나시게요.
/최화경 전주문협회원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1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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