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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요일별 특집

[온고을 문학산책] 청소기는 죄가 없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12월 16일
ⓒ e-전라매일
나만의 취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젊음에 기댄 것이었다는 걸 나이 먹으면서 알게 된다고 어느 작가가 말했다. 절대 공감이다. 나도 그런 걸 절실히 느끼는 때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젊은 날에는 집안을 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꾸미고 살았다. 모든 걸 수납장에 감추고 살림 안 하는 집처럼 말끔하게 해놔야 비로소 나다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항상 도도했었다. 이즈막엔 청소가 참으로 힘든 일 중 하나가 돼버렸다. 음식은 어찌어찌하겠는데 도무지 청소라는 것은 어쩌지 못하는 것에 속한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려면 자기가 사는 곳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고 주변에 설교하듯 떠들었다. 아마 젊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뭔가를 수납장 밖으로 끌어내서 너절하게 늘어놓는 것을 식구들에게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난, 지금 생각해봐도 굉장히 피곤한 사람이지 않았나 싶다. 나이 들면서 수납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항상 어수선한 주변이 참을 수 없이 싫다. 수납장에 넣어 두면 둔 곳이 냉큼 생각나지 않아 그냥 보이는 곳에 놔두게 된다. 생각이 안 나면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그걸 찾느라 몸이 아팠다. 모든 게 보여야 편하고 안심이 됐다. 한눈에 다 볼 수 있으니 구질구질한 것만 극복하면 이것도 나쁘지 않다.

청소의 고단함은 힘도 힘이지만 그 불편한 전선을 끌고 다녀야 하는 유선 청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어질러졌을 때 바로 청소기를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티브이에서 무선청소기 광고를 보고 저게 바로 혁신이다 싶었다. 충전의 불편함은 두 개의 배터리로 해결해주고 무시무시한 흡입력은 미세먼지 걱정까지 없애준다니, 가히 파괴적인 유혹으로 다가왔다. 예전 무선청소기의 짧은 충전 시간과 미미한 흡인력을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무선청소기는 신세계였다. 처음 얼마간은 그랬던 것 같다. 완벽한 것 같은 광고와는 달리 뭉뚝한 흡입구 때문에 구석구석 꼼꼼히 청소하기가 힘들었다. 흡입구를 일일이 바꿔서 끼우고 청소하는 게 유선 청소기 못지않게 귀찮았다. 결정적으로 모터가 손잡이 위쪽에 달려있어 권총을 쏘듯 한 손으로 모든 무게를 감당해야 했고 구부릴 수 없는 일직선의 설계가 어깨에 무리를 주었다. 청소만 생각하면 어깨에 통증이 먼저 왔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걸레질은 여전히 청소의 어려움과 지겨움으로 남아있었고 실망감 때문인지 자꾸 짜증이 났다. 물걸레가 새로 나온 모양이다. 티브이에서는 걸레만 따로 부착할 수 있다고, 물걸레가 청소의 완성이라고 또다시 나를 흔든다. 완벽 할 것 같았던 무선청소기가 신세계가 아니었듯 물걸레는 분명 또 다른 불편과 실망을 줄 것이다. 제발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 아닌 기도를 하며 물걸레 광고를 외면한다.

미친!
로봇청소기 광고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거친 소리가 나온다. 물티슈를 사용하며 걸레의 유혹에서 간신히 빠져나오니 이번에는 로봇청소기가 나를 교란한다. 이 미친 기술의 끝은 어디쯤일까. 그 똑똑한 기계는 말로 청소를 부탁하면 구석구석 잘도 쓸고 닦고 청소를 한다. 어깨 통증도 상관없고, 청소 시간을 따로 낼 것도 없다. 사람이 없어도 척척 청소를 끝내고 강아지처럼 제집으로 쏙 들어가는 로봇청소기는 유혹의 경지를 넘어 거의 유린하는 수준이다. 지긋지긋하게 진화하는 청소기가 자랑스럽기는커녕 우리를 우롱하는 것 같은 마음에 무심히 서 있는 무선청소기를 흘겨본다. 마치 로봇청소기 보다 일찍 나온 게 죄인 것처럼. 그러나 청소기에 줄이 있든, 없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젊은 날 그림처럼 청소해놓고 살던 때는 깨끗함이 취향인 것처럼 우쭐했었다. 나이 든 이즈막, 청소가 시들해져 깔끔치 못한 내 주변이 민망해서 애꿎은 청소기 탓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최화경
전주문협회원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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