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기다림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12월 29일
|
 |
|
| ⓒ e-전라매일 |
| 가을의 산야는 마치 물감으로 덧칠해 놓은 것처럼 한 폭의 비단이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하다. 지나가는 길손의 마음까지 부자로 만든 누런 황금벌판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알곡은 농부의 곳간을 빼곡히 채웠지만 논바닥의 허전함을 현란한 단풍의 기운으로 치유할 수 있어 그마저 깜찍하고 뿌듯하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인 만큼 족히 풍성하지만 허전함을 떨치지 못하고 저무는 석양빛처럼 내 가슴 속에서 퍼덕이고 있다. 지난여름 친구가 떠났다. 아니 내가 그 친구를 놓았다고나 할까? 붙잡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녀는 왜 갑자기 잘 지내던 우리와 등을 돌렸을까? 우정에 조금씩 실금이 가기 시작한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틈이 커지면서 쪼개지고 말았다. 그녀는 나를 무척 좋아했었다. 나를 좋아하는 만큼 나도 그녀를 끔찍이 생각했었다. 내게 인생의 단맛과 쓴맛의 야릇함을 가르쳐주고 그렇게 떠났다. 오래 전 어느 날, 그녀는 느닷없이 소나기처럼 내게 정을 주며 바짝 다가왔다. 나의 어떤 면이 좋아서였을까? 나도 세련 돼 보이는 그녀가 싫지는 않았다. 그녀는 초면에도 거침없이 뜨거운 정을 주며 사람을 쉽게 잘 사귀는 발랄한 성격의 소유자다. 나는 그런 그녀의 성격을 장점으로 여겼었다. 줄곧 주변 사람들을 쉽게 사귀고 쉽게 놓았다. 그런 점이 내 눈에는 모순으로 보여 가끔 친구로서 지적해 주었던 게 싫었던 모양이다. 나의 지적이 그녀에게는 자존심을 상하게 했고 틈을 만드는 빌미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한때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애교와 사교성이 많은 그녀는 여자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항상 시간과 가진 것이 많은 그녀는 날씬한 몸매에 옷을 잘 입고, 아는 것이 많았다. 당돌하지만 똑똑하고, 재치 있는 선망의 모습이었다. 같은 이성으로서 항상 마음도, 성격도, 인심도 넉넉해 보여 좋았었다. 그런 그녀가 쉽게 왔다가 쉽게 돌아간 자리가 너무 크다. 그래서 때때로 허전하기도 하고 속상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친구들을 모두 외면하고 갔다. 왜 그랬을까? 지난여름 그날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느 날, 한마디 말도 없이 그녀는 등을 돌렸다. 사교성이 좋아서 쓸쓸하고 외롭게 보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이 쓰인다. 그녀를 이해하자고 마음을 달래 본다. 이 가을이 깊어져 겨울이 오면 그녀도 고독한 추위를 느낄 테다. 따뜻한 봄이 오기 전에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녀의 성격을 이제 알았다. 좋은 면만 보고 단점에 대해서는 감추어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나 자신에게 질책을 하며 반성한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담 너머로 늘어진 가지에 탱글탱글한 빨간 감을 바라보며 어린 풋감이었던 지난날의 나를 돌아본다. 그녀에게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내가 손을 내밀면 분명히 내 손을 잡아 줄 것 같다. 그녀를 위해 쓴 소리를 해준 나를 지금쯤은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 만나 수다스럽게 속마음을 털어놓던 그 커피숍 그 자리가 그리워진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진한 향을 내뿜어 행복을 느끼게 해주던 따끈한 헤이즐럿커피가 그립다. 향기 그윽한 커피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아 눈웃음을 예쁘게 치던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정성려 전주문협회원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12월 29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