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온 고을 선 너머의 추억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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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에 서원 너머(세칭 선 너머)라는 고개가 있다. 중화산동 예수병원 가는 그 고개 너머에 배움에 굶주린 청소년들이 밤마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대학생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던 <운장학원>이라는 야학당이 있었다. 양재학원을 임시로 빌려 사용하는 교실 두 칸 정도의 허름하고 낡은 집이었다. 이곳을 <요한대>라 이름 짓고 배움의 보금자리로 만들었던 분들은 전북대학교에 다니던 <운장암> 동아리 학생들이었다. 1960년 4․19혁명이 끝나고 민주화 바람이 불던 12월 1일에 만든 학생동아리였다. 그분들이 <운장학원>이라는 학원을 설립하고 가난에 배움을 잃은 청소년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가난은 죄일 수 없습니다. 더구나 순백의 어린 생명들에게 무지無知의 체형體刑을 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중략) 가난에 쫓겨 배움을 등져야만 하는 “내 동생들”을 모아 오직 따뜻한 “精”과 “誠”으로 배움의 길을 열어 줌으로써 ……」이처럼 운장학원 설립취지문을 만들고 야학을 시작한 그곳에서의 나의 추억을 더듬어 본다. 대학생이 되어 나는 가정교사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영문과 H 선배가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권유하여 따라나선 것이 나의 야학 수업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가정교사로 숙식하던 곳이 전주시장 댁이었는데 일주일에 금요일과 토요일 밤을 허락을 받아 영어를 가르치기로 했다. 이때가 1966년 봄이었다. 낮에는 일터에서 고된 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중학 과정을 배우는 1학년 학생 24명의 담임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한 추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김×열, 오×황, 박×주, 이×인, 김×진, 양×철”… 그들의 이름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가난은 죄일 수 없다. 더구나 어린 소년․소녀들에게는 그 가난이 그들의 몫일 수는 더욱 없다. 내가 대학 다니던 1960년대 초에는 가난과 무지와 부패들이 이 나라를 뒤덮고 있을 때였다. 그런 와중에 주경야독의 어린 동생들에게 한 자 한 자 가르치면서 중학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던 대학생들이 모인 동아리가 다시 만들어졌다. 운장암 동아리 선배들이 졸업하고 그 뒤를 따라 “새돌회”(새로운 돌)라는 이름으로 모여 학원을 맡아 운영하게 된 것이다. 저녁 수업 중 전깃불이 나갈 때는 어둠 속에서 불렀던 교가 “비사벌 옛 터전 요한대 위에....”를 추억해본다. 비가 오면 빗물이 새어들어 교실 바닥을 적시던 일, 다가공원에서 텐트 치고 가르쳤던 일들을 회상하며 다시 일어나 어린 새싹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면서 밤을 지새웠던 일은 잊을 수가 없다. 학원 아래 동네에서 살던 K 군이 쓴 “학원과 나”라는 글에서 나는 눈물로 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요한대> 제4호 학원 소식지에 실린 글을 요즈음도 나는 가끔 펼쳐 읽는다. 저녁에 학원엘 나가면 야간작업을 못 해 수입이 적어진다는 식구들의 성화에 한동안 학원을 결석할 때는 학원에서 들리는 글 읽는 소리 때문에 밤새 울었다고 한다. 누렇게 바랜 등사판 책자 속에 쓰여 있는 50년 전의 그 글이 새록새록 눈에 나타나 나의 학창 시절을 불러 깨운다. 그때 함께한 대학 동아리 회원들이 나이 80을 바라보면서도 그 옛정에 묻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추억의 정을 나눈다. 사단법인 <운장새돌>이란 법인체를 만들어 후배들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야학당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라가 발전하고 부강해지기를 빌었던 50년 전의 희망이 다소나마 해소되었지만 지금도 많은 무지의 청소년들이 있다. 운장학원을 졸업하고 60대에 들어선 그 제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한 톨의 씨앗이 누군가를 위해 보탬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 때 그 열매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많이 가졌다고 나누어주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사랑과 봉사 그리고 긍휼의 마음이 가슴속에 있어야 한다. 외롭고 힘들었던 야학의 봉사활동이 나의 교단생활에도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내가 봉직했던 학교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업료를 못 내던 제자를 위해 교회나 자선단체를 쫓아다니며 학비를 구해주던 일들은 야학당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이제 50여 년 전의 그 제자들이 아들딸 낳고 손자 손녀를 둔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이 밤에 나는 그들의 이름을 눈감고 조용히 불러본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헤아리듯이.
/나인구 전북문인협회 이사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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