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시인의 눈] 어흥, 말 내려 온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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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이 말은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의 마지막 문장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말을 바꿔야 한다’ 로 해석한다. 우리는 하루를 말로 시작한다. 시작이 까톡 인사로부터 원고 마감 독촉 이메일까지 액정 화면도 뜨겁다. 심지어 모임에서 끊임없이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자기애(愛) 중독자의 항변은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도 목소리가 높고 쉽게 흥분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몇 년 전 그가 생각난다. 사무적인 일로 어느 건물에 들어서는데 멀리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김없이 그가 맞았다. 한 번 붙잡히면 족히 몇 십 분은 이야길 들어줘야 한다. 잠깐의 안부로 끝날 말도 장황하고 요란하다. 그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아니, 그의 쾡 한 눈동자를 무심히 들여다보면 나는 왠지 그가 안쓰러웠다. 얼마나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저렇게 뚜왈랄라 뚜왈랄라 나팔을 불까. 나는 그의 허한 속을 위해 보약이라도 지어주고 싶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여전히 그가 자기자랑만 늘어놓는단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잦고 상대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는 게 말이다. 그는 알까? 멀리 그가 나타나면 그를 피해 골목 모퉁이로 숨어야 하는 상대방의 심정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다시 그를 만나면 그의 입술에 니베아 펌이라도 발라주고 싶다. 적당히 침도 삼켜가며 말하라고. 마르면 안 되니까. 더더욱 말은 기품 있어야 하니까. 이건 다른 맥락이지만 매력적인 사람의 특징은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너그러움에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데, 그 무거운 짐의 차이가 개성으로 빛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쩌면 말 많은 그는 자존감이 낮거나 자기를 알아달라는 애절함이 크거나 현실로부터 도망쳐 몸을 숨기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 글이 나갈 즈음 나는 휴대폰을 꺼두고 잠수 탈지도 모르겠다. 전국에서 전화가 나불나불 울릴지도 모르므로. 그가 누구냐고? 바로 그 사람은 당신과 나가 아닐까. 그와 나로부터 테이블과 의자를 바깥으로 잡아 뺀 사람은 당신과 나가 아닐까. 적어도 삶을 바꾸려면, 말을 바꾸려면 침묵을 연습하자. 말하지 않고도 다 말하는 침묵의 본질을 공부하자. 숨도 쉬지 않고 당신 이야기를 들어준 저 순진한 무구함에 감사하라. 오죽하면 신이 마스크를 다 씌웠을까. 새해벽두에 말이 많았다. 이 글은 첫 행 빼고 다 사족이다.
/이문희 시인 전북시인협회 편집위원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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