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사라진,, 무너진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2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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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에 대한 지독한 편견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것은 어리석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죄악에 가까운 몹쓸 마음이다. 난 음악을 좋아한다. 아니, 악기를 다룰 줄도 모르고 거의 음치에 가까우니 음악을 좋아한다기보다 듣기를 좋아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클래식, 판소리, 동요까지 가리지 않고 듣지만, 발라드란 장르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한 음악이다. 재즈나 리듬앤 블루스에 비하면 왠지 답답해서 잘 안 듣게 된다. 내 음악감상의 단계는 3단계다. 찾아 듣는 곡 <음반을 사거나 유튜브 뒤져서 듣는 곡> 그냥 두는 곡<어디서 들리든 그냥 듣는 곡> 꺼버리는 곡<참을 수 없어 피하거나 그냥 꺼버리는 곡> 그는 발라드의 왕자, 버터 왕자, 이런 닉네임으로 불리며 모든 여성의 로망쯤 되는 것 같다. 그의 ‘잘 자요, 한마디면 기절할 듯 녹아드는 모양새가 너무 역겨워 그의 노래, 그가 나오는 예능은 거의 꺼버렸던 기억이 난다. 말하자면 그의 노래는 나의 음악감상 3단계, 꺼버리는 곡이었다. 노래가 싫으면 그만이지 왜 사람까지 싫어했을까. 아마 나의 편견에서 오는 오만 같은 것 아니었을까. 데뷔한 지 20년이 넘은 그의 노래를 한 곡밖에 모른다. 옹알이처럼 답답한, 지겨운, 식상한 그 노래는 워낙 유명해서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들려오던 <거리에서>란 노래다. 그는 언제부턴가 영어 실력까지 뽐내며 TV를 어지럽게 했다. 요즘 말로 참 재수 없었다. 그가 나오는 프로에 채널을 고정한 적이 맹세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편견의 횡포 같은 것 아니었나 싶다.
코로나 19로 모든 게 사라지고 무너졌다. 공연도 전시도 만남도 여행도 사랑마저 부서져 버렸다. 이즈막엔 역지사지, 측은지심의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도모할 수 없는 지경이다.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어서인가. 요리, 시식 방송만이 꾸준한 관심과 인기를 유지하는 듯했다. 그가 TV에서 노래 대신 요리를 한다. 섬세하고 정성을 다하는, 때론 프로 같은 모습이 그의 목소리와 함께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어느 시식 방송 프로에서 천덕꾸러기 머슴의 편안함을 주더니, 오디션 프로의 심사위원으로 나와 출연자를 따뜻하게 격려하고 뜨겁게 환호하고 단호하게 질책하는 모습이 너무도 인간적이었다. 결혼한 사람을 부러워하며 노총각인 자신을 향해 한숨을 쉬는 그가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도도하고 재수 없던 사람으로 치부하며 무시했던 그동안의 나의 편견이 민망하고 미안했다.
어느 날 인가 난 놀랍게도 오래전에 그가 부른 <여우야>란 노래를 들으며 흥겨워서 둠칫둠칫 몸을 움직였다. 이런 노래가 있었다니. 좀 더 일찍 그를 이해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코로나 19로 모든 공연이 취소됐고 그는 노래하고 싶어 했고 뭐든 하고 싶어 요리하고 예능 하고 광고 촬영하고 절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모든 걸 보여준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바쁜 가수였겠지만 말이다. 덕분에 그의 치열함의 매력에 빠져 그가 나오는 광고를 기다린다. 아직은 그의 노래를 즐겨 들을 자신은 없지만, 그가 광고에서 진지하게 설득하는 상품을 사고 싶은 유혹에 빠지곤 한다. 그에 대한 편견과 오만에서 오는 횡포는 이제 사라진 듯하다.
코로나 19는 많은 걸 무너지고 사라지게 했지만, 또 다른 세계를 발견 할 수 있게 했다. 이제 안타깝게 이놈의 코로나, 이놈의 마스크, 언제 끝나려나 분노하고 원망만 하지 말자. 나갈 수 없다면 부서진 그 속으로 들어 가 보자. 사라진, 무너진 것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면 편견과 오해로 일그러져 있던 세상의 일들이 한순간에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최화경 전주문협회원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2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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