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 공감, 톡톡! 이달의 독립운동가] 강기덕 선생을 소개합니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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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강기덕 선생을 2022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습니다. 강기덕 선생은 3·1운동을 시작으로 신간회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을 했고, 광복 이후에도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등 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입니다. 선생은 188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명 중의 한 명(학생대표, 보성법률상업학교 재학 중)으로 독립선언서를 각 학교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3월 5일 2차 시위에서 깃발을 흔들며 군중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경에 체포돼 1년 6개월 옥고를 치렀습니다. 1921년 11월 만기 출소해 고향인 원산에서 인쇄업에 종사했으나, 1924년 3월경 원산 보광학교 3·1운동 5주년 기념 인쇄물을 제작하며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선생은 조선농민의 참담한 현실을 강조하며 경작제도의 문제를 개선해 농민들의 수입증진을 위한 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경에 체포돼 6개월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소 후 선생은 신간회 원산지회 발기인회에 참여해 설립준비위원과 상무위원을 맡았고, 1927년 7월 11일 신간회 원산지회 설립대회에서 간사로 선임됐습니다. 선생은 신간회 활동을 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 마련과 신문지법 중단을 촉구했고, 소작쟁의에 관한 불량지주의 죄악 조사를 요구하는 함남기자 연맹사건에 연루돼 징역 8개월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1929년 11월 만기 출소해 원산지회 지회장에 선임된지 얼마 되지 않아, 원산 학생들이 일으킨 일제 반대 시위에 연루돼 1930년 2월 또다시 구속됐다가 풀려났습니다. 1931년 이후 선생은 원산노동조합 간부로서 노동조합의 재건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933년 또다시 징역 1년 2개월 옥고를 치렀고, 1935년 만기 출소했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 중앙위원을 맡아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꿈을 실현시키지 못했고, 6·25전쟁 중 납북됐습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강기덕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제공=서부보훈지청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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