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고마운 청설모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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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이 되자 벽에 걸린 달력이 달랑 한 장만 남았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몇 번 듣고, 망년회만 거치면, 망구(望九)의 해인 신축년도 무사히 넘길 거라 생각하고, 조신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인 크로스가 나이테 하나를 완성하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아느냐며 재를 뿌리고 있었다. 12월 중순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다. 모 식당에서 모교 교감으로 재직할 당시의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려진 것처럼 발이 차가워지더니, 잠시 후에 나는 119구급차 앞에 서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며 거절했지만, 응급실로 가봐야 한다며 등 떠밀려 승차했다.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고, 손을 떨며,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다고 말하는 걸로 봐, 순간적으로 정신을 깜박한 모양이었다. 그날 집에서 모임장소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서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갑자기 설사기를 느꼈다. 금방 쏟아질 것처럼 급했지만, 일요일이어서 화장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정말 생고생을 했다. 119구급차 안에서도 급해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부터 다녀왔다는 설명을 듣고, 담당의사는 용변을 억지로 참을 때 나타날 수도 있는 증상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자 정신이 멀쩡해졌지만, 구급차로 후송된 응급환자이기 때문에 수액주사를 맞으며 의사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CT와 X-ray를 촬영한 결과 별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며, 잠시 안정을 취한 후 귀가해도 좋다는 말을 듣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며칠 전에 화산공원에서 본 청설모가 눈앞에 선히 나타났다. 12월 초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화산공원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청설모 한 마리가 나타났다. 요즘은 야산에서 다람쥐나 청설모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아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을 때, 옆의 졸참나무에 바르르 올라갔다. 나무의 중간에 있는 삭정이 끝에 이른 청설모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벼랑 끝임을 지각한 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어서 얼른 스마트폰을 꺼냈다. 둔한 손놀림으로 촬영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벼랑 끝에 선 청설모의 대처능력이었겠지만, 청설모는 돌아서서 내려오더니 보라는 듯이 다시 바르르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청설모는 훌륭한 기사(棋士)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둑을 다 둔 후에 패착점을 알아보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그 순서대로 벌여 놓는 복기(復棋)의 귀재였다. 오늘 119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행한 사건은 건강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자신에 차 있던 나에게 주는 엄중한 경고였다. 벼랑 끝에 선 청설모처럼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복기하고, 점검하며,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라는 뜻임을 깨닫고, 신경과와 순환기내과에 예약하고 귀가했다. 참으로 고마운 청설모였다.
/이희근 전주문협회원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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