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 공감, 톡톡! 이달의 6·25전쟁영웅] 국가보훈처 선정 임택순 공군대위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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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익산시 전북대학교 특성화캠퍼스 내에 있는 화랑회 이상운의사 추모탑을 소개합니다. 이상운(李相云)의사는 1927년 3월 6일 지금의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943년 이리농림학교(현재 전북대학교 특성화캠퍼스)에 2학년 재학 중에 동기생인 장지환·김구·김영준·호중기, 후배 서기용·김봉수·강동석·박기춘 등과 항일결사인 화랑회(花郞會)를 조직했습니다. 이후 선배 장이규·김직수·김용환과 교외에서 활동하던 김재두, 김해룡 등이 조직한 독립단과 공동으로 행동하기 위해 제휴했습니다. 화랑회는 무기와 폭약을 빼앗아 금구주재소를 습격하고, 또 만경강에 있는 목천교를 폭파함으로써 일제의 수탈통로를 차단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1944년 11월 폭약을 확보하기 위해 김제 모악산에 있는 일본인 광산에 몰래 잠입했으나, 일본 경찰의 삼엄한 경비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후 화랑회 회원들은 체력을 단련하며 다시 거사를 준비하던 중 1945년 4월에 일본 경찰에 조직이 탄로나 모두 검거됐습니다. 이상운 의사는 일본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애석하게도 1945년 7월17일 광복직전에 옥중에서 순국했습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습니다. “제 몸을 썩혀 조국을 소생 시키는 씨감자가 되자”던 의사의 뜻을 기리어 1991년 이리농림학교 총동창회의 후원으로 화랑회 이상운 의사 추모탑을 건립했습니다. /제공=서부보훈지청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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