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봄꽃 아래에서, 문득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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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마다 매화가 서둘러 피며 담장에 걸린 겨울잠을 털어낸다. 우리 동네 골목을 발길 이어지는 대로 걸어본다. 아파트 정원에 산수유가 애처롭게 피어있다. 지난 가을 가지치기를 지나치게 한 탓에 몽당비 같이 남은 가지에 듬성듬성 꽃을 피웠다. 새로 돋는 가지에서 피어날 이파리들이 자라 산수유나무의 생명을 유지시킬 테니 그때를 기다리고 서 있으리라. 그 곁에 선 목련은 봉오리를 팽팽하게 부풀리고 서서 터트릴 순간을 기다린다. 꽃에 대한 안목이 지극히 부족한 나다. 한때 매화와 벚꽃을 세밀히 관찰하며 첫눈에 구분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지러 애썼다. 골목 안, 작은 공원에 매화가 보여 다가가니 서로 가지를 엇갈리며 벚꽃이 함께 피고 있다. 나뭇가지가 푸른 청매화는 지는 중이고, 팥알 같은 꽃봉오리를 잔뜩 달고 있는 벚나무에 분홍빛 꽃받침을 한 벚꽃이 여러 송이가 피었다. 이렇게 한 곳에 서 있으니까 한 눈에 달라 보이는데 한동안 특징을 찾느라 애썼다. 골목을 다니면서 봄꽃에 취하는 동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아. 그 사람이 왜 안 보이지?’ 이렇게 골목을 돌다보면 어디선가 쓰레기를 줍다가 거수경례를 하던 그 사람. 봄꽃보다 더 먼저 주민들 곁으로 다가와 주던 그이가 안 보인다. 내가 기억하기는 나보다 더 오랫동안 이 동네에 머물던 사람이다. 아침 출근길에는 건널목에 서서 교통정리를 하고, 출근하는 사람들과 눈길이 맞닿지 않아도 인사를 하던 그이. 그이를 처음 본 날도 화창한 봄날이었다. “예뻐 예뻐” 담장에 곱게 핀 개나리를 찍다가 인기척에 놀라 돌아보니 자기는 아니라는 듯 주변 쓰레기만 줍더니 그냥 가버린다. 내가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이후에 본 그는 손수레 하나 끌지 않고 종량제 쓰레기봉투와 집게만 손에 들고 다녔다. 겨드랑이에는 빈 상자를 끼고 바삐 걷다가 스치는 행인에게 뒷말을 흐리면서 ‘안녕하시…’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늘 혼잣말을 하면서 바쁘게 골목길을 누빈다. 오라는 곳은 없는 것 같은데 늘 갈 곳은 많다. 사계절에 맞게 의복이 바뀌는 걸 보면 분명히 가족은 있다. 하지만 일터는 우리 동네인데, 동네 주민은 아니다. 가끔 형광 노랑 조끼를 입고 다니기도 한다. 노인일자리에 뽑힌 것 같지는 않지만 운전자 눈에 잘 띄어 덜 위험하겠다 싶을 뿐이다. 가끔은 손에 천 원짜리를 들고 마트로 들어가 막걸리를 들고 나온다. 나들가게 주인이 그가 내민 돈 두 배의 막걸리를 주는 눈치다. 막걸리를 들고 인근 인심 후한 식당에서 김치를 얻어 한적한 거리에 앉아 먹는 것이 그의 끼니이기도 하고 새참이기도 하단다. 김치를 얻을 식당이 있다는 것은 그가 발품 팔아 일군 측은지심 때문이리라. 점심을 동석한 적이 있다. 우리 마을에 있는 복지관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그가 배식 받은 접시를 들고 오더니 내 앞에 선다. 고봉밥에 반찬이 푸짐하다. 한눈에 배식담당의 넉넉한 인심이 보인다. 내게 중언부언 인사를 하길래 앉으라고 했더니 음식 접시를 놓고 모자를 벗는다. 구릿빛 팔다리만큼 얼굴도 검붉다. 휑한 이마가 드러나자 보기보다 나이가 들어 보인다. 어림짐작해보니 나와 연배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 쓰레기를 줍고 다녀 시장했던지 한번 뜬 밥숟가락이 크다. 먼저 먹고 있었던 터라 시원한 물 한 컵 떠다 앞에 놓아 주고 눈인사를 건네고 먼저 일어났다. 그는 일 년 내내 자발적인 우리 동네 청소원이다. 그랬던 그이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시절이라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다니던데 어디가 많이 아픈가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들가게에 들러 그의 안부를 물었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가 일 년이 돼 간단다. 늘 그 자리를 지키는 가로등처럼 자주 만났던 그. 해마다 피는 봄꽃처럼 늘 같은 골목풍경으로 보이던 사람이라 떠난 자리도 허전하다. 동네 한 바퀴를 마치고 아파트 화단에 핀 동백꽃을 한참 바라본다. 봄 햇살이 따가운 듯 고개를 떨궜다, 나무아래 내려앉은 꽃송이들이 더 붉다.
/황점숙 전주문인협회회원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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