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마음의 거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8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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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결혼식을 치렀다. 내 삶에서 올라서야 할 봉우리 중 하나를 오른 기분이다. 그동안 발길이 닿지 않았던 사람 사는 구석구석을 엿본 것 같아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청첩장을 돌리고 손님이 얼마나 올까 은근히 걱정됐다. 열 손가락, 아니면 두 배, 세 배 더는 과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상상 밖이었다. 평소 연락하지 않고 살았던 사촌들이 축하 전화를 해주니 힘이 났다. 뿌듯함과 함께 내가 보이지 않는 혈육의 그물로 연결돼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 동시에 잘살고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책임감도 커진다. 두세 시간 거리를 달려와 준 고마운 지인들의 정성을 다시 한 번 가슴에 꾹꾹 눌러 담았다. 결혼식에 올 수 없으면 축의금을 미리 보내니 하객의 수도 어림짐작이 됐다. 예전처럼 참석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축의금을 전달했던 시절도 먼 추억 같다. 통신수단의 발달은 편리함만큼 서운함도 함께 싣고 다닌다. 축의금을 보내고 전화 한 통 없으면 상거래를 하는 것 같은 느낌도 지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예닐곱 해 전 친구 아들 결혼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었다. 코로나 19가 진정된 때라 내심 친구는 축하객으로 오리라 기대했다. 아쉽게도 축의금을 송금하고 축하한다는 전화 한 통을 안 하니 반사시키고 싶었다. 반면 인과응보도 체험한다. 내가 바쁜 일이 있어서 가지 못했던 친구들은 역시 시간을 내지 못했다며 불참을 알린다.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뒤늦은 반성도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미풍양속 중 하나가 애경사에 참석하는 일이었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으면 멀리 살던 친척들이 전날 밤 대사를 치르는 집에 모여 웃음꽃을 피우며 함께 축하했다. 어린 시절 객지에서 살던 친척들이 애경사를 위해 고향집으로 모여들 때면 반가운 반, 부러움 반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로 진출할 때 징검다리가 돼 주는 일가친척들과의 유대는 이런 큰 행사를 함께 치르면서 이어졌으리라. 가까운 친척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데 얼굴을 보며 혈육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애경사가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즈음은 예식장으로 시간 맞춰 모인다. 여러 가족이 함께하니 변함없이 반갑다. 예식장 무대를 꽉 채운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두고두고 자랑거리이다. 온 가족이 같은 좌석에 앉아 잔칫집 음식을 함께 먹고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은 귀하기 그지없다. 마주 보고 앉은 몇 시간이 소원했던 마음의 거리를 확 줄여준다. 결혼식을 마치고 다음 날도 분주했다. 성의를 표해 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행사를 잘 마치게 도와준 고마움을 예쁘게 만든 모바일카드에 담아 보냈다. 멀리서 오신 분들과 집안 어른들께는 직접 전화를 드려 고마움을 전했다. 완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이었지만 발걸음을 하지 못한 분들이 현장 모습을 궁금해 해서 동영상도 전달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영상미디어의 발달로 결혼식 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동영상으로 설명을 대신할 수 있어서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혼주가 돼 산 며칠 동안 내가 세상을 너무 속 좁게 살았다는 생각이 나를 반성하게 한다. 좀 더 넉넉하게 마음을 나누면서 살 것을 왜 그렇지 못했을까. 매사가 앞서지 못하고 겨우 체면치레를 하면서 살았으니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던 좁은 소견이 날 부끄럽게 한다. 따뜻했던 지인들을 떠올리며 그들과 마음의 거리를 헤아려본다.
/황 점 숙 전주문인협회 회원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8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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