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숭늉과 커피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1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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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꽂이처럼 시든 햇살이 서산마루에서 퍼덕이고 있다. 그 햇살 속에 소꿉놀이 하던 유년시절이 아른거린다. 양지바른 담장 밑에서 사금파리들을 주워 모아 빙 둘러 앉아 모래알로 밥을 짓고, 풀을 뜯어 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차렸었다. 그리고 모래알로 만든 밥을 푸고 나서 물을 붓고 숭늉을 만드는 시늉도 했었다. 오늘은, 부엌에서 엄마가 하시던 솜씨를 그대로 흉내 내며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소꿉놀이를 하며 놀던, 어릴 적 그 친구들과 만나는 날이다. 서울에 사는 친구가 추석연휴를 틈타 부모님을 뵈러 내려왔다기에 모임날짜를 앞당겼다. 음식점에 들어서자 명절 끝인데도 손님들이 붐볐다. 어렵게 구석진 자리를 잡고 수다 반, 식사 반, 분위기가 어우러졌다. 식사가 끝날 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올 요량으로 “커피 한 잔씩 대접 하마.” 농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바로 옆에 있던 친구가 커피는 분위기가 있는 카페에서 마시자며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커피를 마시는 하찮은 일에도 의견들이 분분했다. 내 생각은 비싼 커피전문점보다는 음식점의 공짜 커피를 마시는 편이 좋을 성싶었다. 서울에서 오랜만에 내려 온 친구가 있는데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음식점 구석에서 주인의 눈치를 보며 마시는 것보다는 분위기 있는 곳에서 우아하게 마시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배려하는 좋은 생각이어서 모두 동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곳을 거치며 제법 멋있고 분위기가 있는 커피전문점에 들어섰다. 여기도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손님들이 많아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소리는 사람들의 대화에 희석되어 희미하게 들릴 뿐 제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마침 좁은 자리가 있어 친구들이기에 좁혀 앉았다. 분위기는커녕 구석에 촘촘히 붙어 앉았지만 곧 동심으로 돌아간 우리는 수다를 떨며 즐겁기만 했다. 나는 커피 맛에 익숙하지 못한 편이어서 내 방식의 커피 마시는 방법이 따로 없다. 음식점의 공짜 커피나 커피전문점의 비싼 커피의 맛에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자판기 커피 맛에 길들여있다. 하지만 커피전문점에 손님이 많은 걸 보면 맛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이제 하루에 서너 잔은 거뜬히 마신다. 어릴 적에는 식사를 마치고 나면 따뜻하고 구수한 숭늉을 마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숭늉은 사라지고 대부분 생수를 마시고 나서 커피를 마신다. 예전에는 가마솥에 불을 때어 밥을 하면 누룽지가 생겼다. 밥을 푸고 난 다음에 물을 붓고 끓여 구수한 숭늉을 마시면 요즘처럼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입안이 개운하고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전기밥솥에 밥을 하기에 누룽지가 생기지 않아 숭늉을 만들 수조차 없다. 그러기에 구수한 숭늉 맛을 잊고 씁쓸한 커피 맛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음식점을 가보아도 무료 커피자판기가 없는 곳이 없다. 하물며 관공서에서도 민원인들을 위해 공짜로 제공하는 커피자판기를 설치해 놓기도 했다. 커피가 생산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너무 흔해졌다. 커피의 원산지보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를 더 많이 하고 있다니, 풍습이나 식성까지도 고유의 맛을 잃고 세계화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아리송하다 못해 야릇하다. 커피를 적당히 마시면 몸에 좋다지만 많이 마시면 해롭다는 말도 있다. 그 적당히는 얼마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집에 손님이 오면 따끈한 커피를 대접하고, 아는 사람을 만나면 커피 한 잔 하자는 말로 인사를 한다. 바람이 쌀쌀해진 요즘은 가끔씩 현대문명의 일상에서 이탈하여 과거 속에 잠재해있던 구수하고 따뜻한 숭늉이 생각나곤 한다. 오늘은 노릇하게 누룽지를 만들어 구수한 숭늉을 끓여 보련다.
/정성려 전주문협회원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1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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