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10-30 04:31:29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지면보다 빠른 뉴스
전자신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전라매일
·17:00
··
·17:00
··
·17:00
··
·17:00
·16:00
··
·16:00
뉴스 > 요일별 특집

[문학칼럼-시인의눈] 삶을 낭비한 죄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11월 24일
ⓒ e-전라매일
살인죄라는 누명을 쓰고 악명 높은 수용소에 갇힌 빠삐용은 끊임없이 자신의 누명을 밝히고자 몸부림쳤으며, 여러 번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했으나 연이은 실패로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방에 갇혀 어느 날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재판관은 빠삐용을 ‘죄인’이라 공격했고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지 죄가 없다며 항변했다. 그때 재판관은 다시 말한다.
“당신이 주장하는 사건이 무죄라고 하더라도 당신의 인생을 허비한 것은 유죄다.” 나는 이 대목에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생을 허비한 죄, 삶을 낭비한 죄라니!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는지, 시간은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고 모래시계 속의 모래알처럼 빠르게 줄어드는데, 나는 지금 무엇에 정신을 팔고 있는지,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허덕이며 누군가를 향해 화를 끓이고 있지는 않는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름 모범적인 시민으로,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이웃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마음 저 안쪽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무겁고 축축하고 언짢은 그 무엇인가 자꾸 고개를 든다. 오랫동안 억지로 욱여넣고 가라앉히려고 애썼던 가식의 얼굴이다. 아닌 척, 괜찮은 척, 너그러운 척, 고상한 척... 여러 가지 ‘척’들이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울퉁불퉁 떠오르려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척’들을 가두어 둔 나는 누구의 삶을 살았다는 말인가? 곰곰이 나를 들여다보니 눌러놓기만 한 분노의 감정과 견디기만 했던 억울한 생각이 울컥울컥 고개를 치켜든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절규하며 한사코 탈출을 하려는 빠삐용은 재판관에게 항변이라도 하고, 감옥을 빠져나가려는 목적이나 뚜렷한데, 나는 이제와서 누구에게 화를 내고 누구에게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하고 어디로 떠나자는 것인가? 이미 이 세상에 오면서 받은 시간은 거의 다 써버렸는데...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억제하고 눌러 앉힌 삶, 그래서 밖에서 보면 한없이 평온하고 어쩌면 우아해 보였을지도 모르는 삶도 물밑에서 끊임없이 물살을 젓고 있는 백조처럼 말 못 할 가슴앓이가 왜 없을까? 이제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내 목소리를 내고 싶다. 지레 겁을 먹고 남들이 어찌 생각할까 걱정하며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타인의 삶을 사는 일 뒤집어엎고 싶다. 이 나이에 무엇을, 여자가 어떻게...주저하고 눈치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분명 삶을 낭비한 죄인으로 후회만 가득한 삶을 마칠 것이다. 말은 이래도 결국 세끼 밥을 걱정하고 반찬을 챙기는 아직도 며느리, 아내, 어머니, 할머니인 내가 저기 서 있다. 저무는 가을이 쓸쓸하다.

/전재복 시인
전북시인협회 이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11월 24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정읍, 지원금부터 상권 혁신까지 민생경제 선순환 이끈다  
곰소만의 깊은 맛, 줄포대박젓갈에서 만나다  
제4회 김제 자원순환 새로보미 축제 10월 30일 개막  
장수군 민선9기 출범 100일, 성과를 잇고 군민이 체감하는 변화로  
대한민국 농업수도 과학으로 미래를 심다  
민생부터 첨단산업까지… 김제시, 국가예산 대응 총력  
익산 천만송이 국화가 새롭게 활짝 핍니다  
노을이 무대가 되고, 바다가 축제가 된다  
포토뉴스
전북문화관광재단, 베트남 관광시장 공략 본격화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 베트남 현지 여행업계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전북 관광상품 개발과 해외 관광객 유치 확대에 나섰다.전북문화관광재단은  
전주국제영화제 화제작 21편, 서울서 다시 만난다
올봄 전주국제영화제를 빛낸 국내외 화제작들이 오는 11월 서울 관객들과 다시 만난다.전주국제영화제(공동집행위원장 민성욱·정준호)는 제27회 영 
전주문화재단, 한·중·일 전통종이 교류 ‘삼국지향’ 성료
전주문화재단이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전통종이 청년 장인들이 참여하는 국제교류 행사를 열고 전통 제지기술의 보존과 계승을 위한 협력 기반을 마련 
한국전통문화전당, 특별한 결혼식 무대로 변신
한국전통문화전당이 특별한 결혼식 공간으로 변신해 신랑과 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했다.지난 24일 한국전통문화전당 실내 공연장에서는 가족과 친 
남원서 해금의 깊은 선율 만난다… ‘산조+더하기Ⅱ’ 공연
해금 특유의 애절한 선율과 전통 악기들의 조화로운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국악 공연이 남원에서 펼쳐진다.국립민속국악원은 오는 11월 7일 오후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발행·편집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