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여자, 제비꽃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2월 28일
|
 |
|
| ⓒ e-전라매일 |
| 제비꽃. 이제, 그 여자를 이렇게 불러도 좋을 듯하다. 그 여자를 처음 봤을 땐 도무지 제비꽃이 연상되진 않았었다. 똑 부러질 듯 단호하고 아닌 건 아닌 것, 견딜 수 없는 건 견디지 못할 듯, 아니, 견디지 않을 듯 뭔가 분명한 여자였다. 자유로운 영혼처럼 정돈되지 않은 헤어스타일에 은근히 고급한 패션 감각을 자랑하던 그 여자는 제비꽃으로 불리는 지금도 여전히 패셔니스타다. 행동에 대한 가차 없는 평가, 문학 작품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문화에의 우아한 취미, 어떤 사람이 보석인지 금방 알아보는 예리한 통찰력, 제비꽃이 되기 전엔 그 여자에게서 금속성이 더 느껴졌었다.
어느 날인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여자의 근황이 전해졌다. 그러고 보니 여자의 얼굴이 탱자 빛깔로 보이던 때가 종종 있었고 걸음걸이에서 피곤이 묻어났던 것 같기도 하다. 여자의 안색을 살피는 건 조심스럽고 우울하다. 가끔 만나는 여자의 얼굴빛에서 피로와 무기력을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은 여자와의 만남이 언제까지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과 같다. 코스모스길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던 가을, 여자는 가녀린 코스모스가 되어 우리와 나들잇길에 나섰다. 레이스 양산, 샤넬 선글라스, 분홍빛이 많이 든 투피스, 지적이고 절제된 평소의 여자 분위기는 아니었다. 여자는 예뻤다. 그리고 그날, 봄 언덕에 있어야 할 제비꽃을 가을 코스모스 길에서 발견한 것이다. 아마, 이상 기온 탓일 것이다. 꽃들은 기온만 맞으면 계절을 안 가리고 꽃을 피운다. “제비꽃이네….” 제비꽃을 뽑아 든 여자의 표정이 제비꽃의 보랏빛보다 더 신비로웠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모습이 너무 낯설고 처연해서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같은 사람에게서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는 건 새롭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뭐랄까, 그냥 염려스러웠다. ‘선배, 제비꽃 선배.’ 그때 내 입속에서 맴돌던 말이었다. 그 꽃을, 여자가 브로치처럼 가슴에 꽂았던가. 내가 꽂아줬던가. 이상하게 그날의 모든 게 선명한데 그것만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날부터 여자는 나만의 제비꽃이 됐다.
여자의 수필은 언제나 가슴 한쪽이 아릿하다. 미완의 색깔인 여자의 글처럼―. 망원경으로 세상을 끌어다 보는 적적함, 가을의 공원이 갖는 쓸쓸함, 해묵은 흉터 속의 슬픈 아버지,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서 만나는 어머니의 추억, 여자의 글에서 때때로 TV문학관의 순수와 격을 발견한다. 설렘도 없고 그다지 그리운 것도 없는 이즈막 옛사랑처럼 여자의 글이 간절하다.
여자가 갑자기 수다스러워졌다. 이 또한 뜻밖의 모습이다. 받지 않는 전화가 늘어나고 집을 자주 비운다. 여자가 집을 자주 비운다는 건 건강이 좋아졌다는 증거다. 아마 딸네나 아들네에 가 있을 것이다. 병원에 있었을 거란 생각이 안 드는 건 오랜만에 전화를 받는 날, 손자 손녀 자랑하는 목소리가 종달새를 닮았기 때문이다. 여자는 할머니가 됐다. 가장 상상이 안 되는 여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금속성도 제비꽃도 아닌 색깔로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노릇을 잘도 한다. 여자의 건강은 이제 문제도 아니고 걱정도 아닌 듯 그렇게 시간이 간다. 난 여자가 완전히 건강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창백함과 피곤함이 주는 보랏빛이 아니라 신비한 제비꽃 보라색 얼굴로 돌아와, 사유하고 그리워하며 시인처럼 외로워져도 괜찮 을 것 같다. 난 TV문학관처럼 순수하고 향기로운 여자의 글을 읽고 다시 쓸쓸해져도 좋고 멜랑콜리해져 계절을 헤맨다 해도 기꺼이 즐거울 것이다.
/최화경 전주문협회원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2월 28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