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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2월의 6·25전쟁영웅에 최종성 대한민국 공군 중위를 선정했다. 최종성 공군 중위(당시 계급 소위)는 경남 거창 출생으로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공군 조종 간부후보생(제1기)으로 입대해 1952년 8월 교육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후 공군 제10전투비행전대 소속 F-51 전투기 조종사로 1952년 9월 23일, 경기 가평 현리와 강원 회양에 있는 적 보급물집적소를 파괴하는 작전에 처음 출격했다. 1952년 10월에는 공군의 실제 출격이 있는 16일, 20일, 25일, 27일, 30일 하루 2회씩 출격해 강원 고성, 강원 원산 등지에서 적 주요 보급로를 차단하고, 병력 집결지와 군용시설을 공격해 적 전력에 큰 타격을 입히는 등 각종 전투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최종성 중위는 이 전투 공적으로 1952년 10월 24일 을지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하지만, 최종성 중위는 1952년 11월 2일, 동해안 강원 간성지구에서 적의 대공화기가 대량 배치돼 매우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후방차단작전 임무 수행을 위해 강원 원산 남쪽 안변 지역으로 출격했다가 적 지상화기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국가보훈처는 1월의 6·25전쟁영웅에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로 선정했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6·25전쟁 발발에 따른 유엔의 참전 요청에 따라 벨기에군 700명, 룩셈부르크군 48명으로 ‘제1벨기에 대대’를 편성했고, 벨기에 대대는 1951년 1월 31일 부산에 도착했다. 벨기에 대대는 미국 제3사단에 배속돼 1951년 4월 22~25일 임진강 북쪽 금굴산 전투에서 중공군 공세를 이틀에 걸쳐 저지해 영국군이 철수로를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또 1951년 10월 11~13일 강원도 철원의 학당리 전투 등에 참여해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벨기에 대대는 1953년 2월 26일부터 4월 21일까지 이어진 ‘철의 삼각지대’ 내 강원도 김화 잣골에서 55일 연속으로 진지를 지키며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국방부는 벨기에군과 룩셈부르크군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1975년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84-48(소요산관광지앞)에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기념비를 건립했다.
최종성 대한민국 공군 중위 (1931.12.19.~1952.11.02.) 상훈 : 을지무공훈장(1952.10.24.) - 출처 : 전쟁기념관 -
/제공=서부보훈지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