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 공감, 톡톡! 이달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감옥동료, 권애라 심영식·신관빈·임명애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3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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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3월의 독립운동가에 개성과 파주 지역의 3·1운동을 주도하고, 유관순 열사와 서대문감옥 여옥사 8호 감방 동료인, 권애라 · 심영식 · 신관빈 · 임명애 선생을 선정했습니다. 경기도 강화(현 인천광역시) 출생(1897년)의 권애라 선생은 1918년 서울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호수돈여학교 부설 유치원 교사로 재직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선생은 예배당에 숨겨두었던 독립선언서를 직접 꺼내와 심영식, 신관빈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 배포하고, 3월 2일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준비했습니다. 다음 날인 3월 3일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은 거리시위에 나서며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 시위로 선생은 독립선언서 배포 혐의로 체포돼, 1919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아 경성복심법원에 상고했으나, 1919년 7월 형이 확정돼 옥고를 치렀습니다. 1887년 개성 출생의 심영식 선생은 열병을 앓은 뒤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호수돈여학교를 거쳐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공부했고, 1919년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권애라, 신관빈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서 참여했습니다가 체포돼 1919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투옥 중 간수에게 뺨을 맞고 고막이 터져 평생 한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후유증으로 고생)를 치렀습니다.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아 개성 미리흠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준비하다가 체포돼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6개월 만에 출옥했습니다. 1885년 황해도 출생의 신관빈 선생은 호수돈여학교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기독교 전도사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권애라, 심영식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했습니다. 다음 날 3월 2일 선생은 교회에서 체포돼, 1919년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1886년 경기도 파주 출생의 임명애 선생은 한국 구세군 사령(염세호)의 배우자로 1919년 구세군으로 활동했습니다. 1919년 3월 10일 파주군 교하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1백여 명을 이끌고 앞장 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했습니다. 이는 파주의 첫 만세시위였습니다. 3월 25일에는 선생의 집에서 배우자, 학생 등과 함께 격문을 작성해 주민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선생은 거사 예정 이틀 전인 3월 26일 염규호 등 700여 명과 와석면사무소로 가서 유리창을 부수고, 면서기들에게 휴무하라고 압박했으며, 주재소로 진행하던 중 일제 헌병의 발포로 최홍주가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고 시위대는 해산됐습니다. 선생은 이날 현장에서 체포돼 1919년 6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권애라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심영식 선생과 신관빈 선생에게는 1990년과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으며, 또한 임명애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제공=서부보훈지청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3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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