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을 디자인하다(1-9)] 임플란트 경고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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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금니 1개가 문제를 일으켰다. 의사는 임플란트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진단하였다. 오복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나 하는 지레짐작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처졌다. 치과를 나와 터벅터벅 걸었다. 눈길이 길바닥으로 꽂혔다. 보도블록 위에 가을이 내리고 있었다. 떨어지기 시작한 노란 은행알이 겉껍질이 조글조글한 채 나뒹굴었다. 아직 대량으로 농익지 않아서 특유의 냄새를 풍기지는 않았다. 어떤 열매는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지나가면서 방아를 찧었는지 하얀 가루가 되다시피 했다. 치아도 바스러지면 저럴까? 애써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조금 전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본다. 위생사가 치석을 긁어내고 이와 잇몸 사이에 소독약을 발랐다. 치간칫솔로 잇새를 닦아낸 후에 이를 꼼꼼히 닦아줬다. 마치 양치질은 이렇게 해야 원칙이라고 본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 닦기를 마치고 양칫물로 입안을 헹궈내니 더없이 청량했다. 매번 스스로 하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도움받으니 더욱 개운한 느낌도 들었다. 남이 차려 준 밥이 더 맛있다고 하는 이치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입안에서 혀를 한 바퀴 굴려보았다. TV 광고라면 이런 때 ‘뽀드득’ 소리를 입혔을 거라고 상상하는데 의사가 다가왔다. 4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여의사는 연한 파란색 가운을 입었고 위생 장갑을 장착했다. 머리에는 가운 색과 같은 비닐 모자를 썼다. 안경에 마스크, 그 위에 또 투명 플라스틱 안면보호 마스크를 덮어썼다.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의사들이 썼다던 황당한 새 부리 마스크와는 달랐지만, 완전 무장을 하고 환자를 대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는 각종 기구가 갖춰진 진료 테이블을 끌어당기며 의자에 턱 자리 잡고 앉았다. 체격이 큰 점도 있었지만, 풍기는 아우라가 흡사 전투에 임하는 장수 같았다. 그는 가까이 다가와 내 의자를 눕혔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자기를 탐색하지 말라 경고하듯이 초록색 보자기로 내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어머니, 괜찮으셨어요?” 두 달만의 안부다. “예. 그런데 오른쪽 위 어금니의 잇몸이 부은 적 있었어요.” “그러셨어요? 제가 볼게요.” 그가 내 잇속을 살피더니 곧장 말했다. “어머니, 이 뿌리가 부러졌네요.” 치아 뿌리가 부러졌다? 담담했던 기분이 갑자기 지하로 곤두박질쳤다. 의사는 내 심기와 상관없이 인턴인지 간호사인지 모를 스태프와 대화를 이어갔다. “보세요. 뿌리가 부러진 거야. 충치면 치아 색이 갈색이거든? 근데 이 경우는 회색이잖아?” 어떤 상태인지를 공유하거나 예후를 전수해주는 것 같았다. 곁에 있는 사람은 거의 “네, 네.”라고 대답하거나 수긍하는 정도였다. 그것은 마스크 때문이었던지 환자에게 잘 들리지 않게 하려 했는지 어눌한 복화술같이 들렸지만, 더 강렬한 파장으로 전달되었다. “변죽을 치면 복판이 울고, 기둥을 치면 대들보가 떤다.”라지 않던가. 거기다 “어머니, 임플란트하셔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듣는 순간 불편한 마음이 다른 곳으로 튕기기까지 했다. ‘의사 양반, 내가 왜 그쪽 어머니야? 말끝마다 어머니, 어머니라니요. 언니는 못 되더라도 뭐 다르게 호명할 수는 없나요?’라고 속으로 항변했다. 그건 사실 그냥 해본 소리지, 내가 그 입장이어도 별 뾰족한 호칭이 없기는 했다. 환자님? 고객님? 선생님? 내가 종종 또는 수없이 들어온 대명사들로 이제는 그만 들어도 괜찮은 호칭들이었다. 그렇다면 사장님? 이 또한 헛이름이다. ‘아무개 씨’라고 환자 이름을 부른대도 딱히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뚱딴지같이 생각하는 동안에도 의사와 스태프는 대화를 이어갔다. “오래전에 손상된 치아였어요. 그동안 잘 쓰셨는데….” 그랬다. 이 치아는 둘째 출산 전후 어느 날에 맥없이 툭 떨어져 나갔다. 무슨 과자부스러기처럼 허망하게 달아났다. 왜 그랬을까 이유를 몰랐다가 『탈무드』에서 「어머니의 뼈」라는 글을 읽고 아하, 나도 어미가 되느라 그랬겠구나, 싶을 때가 있었다. 랍비와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뼈 무더기를 발견했다. 스승이 물었다. 너희 중에 저 무더기 속에서 어머니의 뼈를 고를 수 있겠느냐고. 제자들은 여러 의견을 냈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그때 랍비가 뼈다귀 하나를 골라냈다. 그리고 말했다. 어머니는 자녀를 잉태해서 낳을 때까지 자양분을 아이에게 전달한다. 심지어 뼛속 진기까지 다 빼내 준다. 그래서 어머니의 뼈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색깔마저 거무튀튀하다고 했다. 그랬다. 치아도 뼈의 성분과 같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수긍하며 상한 이를 치료받았다. 세월이 흘러 잊을 만한 때에 보정 근처에 충치가 생겨 재치료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니 오래 잘 썼다는 의견이 과언은 아니다. 중간에 바꾼 병원이 이곳으로 어언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처음 방문했을 적에도 어금니를 뽑아야 할지 모른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무탈했다. 최근에 특별한 전조가 없었는데도 잇몸이 부었다 가라앉기를 몇 번 반복했다. 지금 발치하고 대처한다고 해도 억울하거나 아쉬울 건 없다. 이것이 인생의 가을로 가는 길목이고 변하지 않는 원칙일 것이어서 스스로 기운을 자꾸 추슬러 보았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일련의 과정을 견뎌야 한다는 게 딱히 유쾌하지도 않다. 살짝 심통도 났다. 요즘은 치아 보정의 기술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턱뼈에 뿌리를 대신할 인공 대체물을 심고 지주대를 세우고 가공 치아를 만들어 씌우는 과정을 겪을 일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지 의사는 잇몸을 부분 마취하고 치료한 후에 항생제와 소염제를 처방했다. 그리고 당장 임플란트하자고 하지는 않았다. “어머니, 이 약 꼭 챙겨 드시고요. 경과 보시게요. 이 뿌리는 한 번 부러지면 붙지 않아요. 잘 관리하시고 두 달 후에 뵐게요. 그 전에 이상 있으면 방문하시고요.” 떨어진 은행알을 피하면서 걷는데 옆에서 남편이 거든다. “걱정하지 마. 임플란트하게 되면 하는 거지. 요즘은 정부에서 비용도 조금 지원해 준다고 해.” 나와는 또 다른 염려를 하고 있었다니 피식 웃음이 났다.
/김숙 전)중등학교교장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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