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 공감, 톡톡! 이 달의 독립운동가] 김창환·이진산·윤덕보·김원식 선생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2월 07일
국가보훈부는 2월의 독립운동가에 일제강점기, 정의부 소속으로 만주에서 무장 독립투쟁을 펼친 김창환, 이진산, 윤덕보, 김원식 선생을 선정했다. 1919년부터 만주에서는 많은 독립운동 단체가 일제에 무장투쟁으로 저항했다. 일제는 1920년경 신참변을 자행했고, 불안정했던 재만 한인사회는 독립운동 전선 복구를 위해 8개 단체가 모여 1924년 정의부를 설립했다. 김창환 선생은 대한제국 육군으로 복무하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비밀결사단체 신민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한통의부에서는 의용군 사령장으로서 군사적 역량을 발휘했으며, 정의부에서는 재무위원으로 활동했다. 1931년 만주사변 당시에는 한국독립군 부사령으로 일제와의 전투에서
활약했고, 이후 조선민족혁명당 간부로 활동하다가 중국 남경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진산 선생은 신민회 인사들이 세운 신흥무관학교를 후원하고, 서간도 독립운동 기관인 한족회 법무부장으로 활동했다. 1919년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된 선생은 다른 의원들과 한국 독립청원서에 서명했다. 이 문서는 태평양 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이후 국민대표회의 의정기초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정의부에서는 법무위원장을 맡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윤덕보 선생은 함경남도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이주해 대한독립군비단에서 활동했다. 1922년, 대한광정단에서 총무장으로 단체의 활동을 지원했으며, 조직이 확대 개편된 이후에는 대한광정단 단장이 됐다. 1924년에는 정의부 행정위원으로 선출됐으며, 중앙행정위원장과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약했다. 김원식 선생은 경북 안동에서 만세 시위를 하다 만주로 이주해 서로군정서에서 군자금 모집을 했다. 정의부에서는 비서장을 맡았으며, 재만농민동맹 집행위원, 신한독립당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후에는 만주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낙양군관학교 한인 입교생 모집에 힘썼다. 김창환, 이진산, 윤덕보, 김원식 선생은 3.1운동 이후,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만주로 이주해 조직적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했으며, 독립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 /제공=서부보훈지청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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