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죽음으로부터 생겨났다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5월 22일
석가모니는 BC 624년 음력 4월 8일 고대 인도의 샤캬 부족의 소왕국 ‘카필라’의 왕인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왕자로 태어났다. 석가는 병이나 노쇠함, 죽음을 접해본 적이 없이 그저 왕궁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온 왕자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세상 구경을 위해 수레를 타고 궁궐 밖으로 나갔다. 그때 이가 다 빠져 침을 질질 흘리며 흉측한 몰골을 한 노인을 보게 되었다. 석가는 그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마부에게 물었다. “저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무엇이 저 사람을 저토록 가련하고 역겹고 추악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닥쳐오는 운명이고, 자신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자는 더 이상 세상 구경할 마음이 싹 사라져 다시 궁궐로 돌아와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골똘히 사념하게 되었다. 왕자는 깊은 생각 끝에 무슨 해답을 얻었는지 또다시 수레를 타고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병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병자는 깡마른 몸, 창백한 얼굴, 침침한 눈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던 왕자는 수레를 멈추게 한 후에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고, 그것이 병이라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또다시 의기소침해져서 마부에게 명하여 궁궐로 돌아왔다. 왕자는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세 번째로 다시 수레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사람들이 무언가를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왕자는 “저 사람들이 메고 가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부가 “죽은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왕자는 “죽음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부로부터 “죽음이라는 것은 저 사람처럼 되는 것이다.”라는 대답을 들은 왕자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관을 열고 시신을 보고서, “이 사람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마부는 “그 사람은 곧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왜 그러느냐?” “그 사람은 이제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 것이고, 그 사람에게서는 단지 악취와 구더기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란 말인가!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란 말이지? 나도 땅에 묻혀 썩어서 악취를 풍기고 구더기에 갉아 먹힐 것이란 거지!” “그렇습니다.” “돌아가자! 더 이상 돌아다니고 싶지 않구나. 이젠 다시는 바람 쐬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있는 후로 석가는 삶에서 그 어떤 즐거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29세가 되던 해 어느 날 밤,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깨우쳐야 한다고 결심하고 가족에게 무언의 이별을 고한 채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싯다르타 왕자가 왕궁을 버리고 출가하여 수행의 길에 들어선 목적은 죽음의 문제를 풀기 위함이었다. 출가를 만류하는 부왕에게 “죽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면 출가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출가한 이후 오랫동안 진리를 추구했던 왕자는 어느 날 진리를 찾을 때까지 결코 일어서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둘레 3m, 높이 30m의 보리수나무 밑에서 6년간 수행하다 깨달음을 얻었다. 죽음 이해에서 중요한 용어가 바로 생사윤회와 열반이다. 생사윤회와 열반은 불교적 죽음관의 핵심이자 부처님 가르침의 근간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죽음으로부터 출발한 최초의 종교이다. 붓다의 출가 동기, 깨달음의 구체적 내용, 그리고 열반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교의 죽음 이해가 보다 분명하고 알기 쉽게 제시된다. 부처님은 서양철학의 전통을 창시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이상의 위대한 사상가이다. 특히 쇼펜하우어, 하이데거, 니체, 에리히 프롬 등은 불교를 수용한 철학자들이다. 이중 쇼펜하우어는 19세기까지의 서양 철학자 중에서 불교를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본 철학자이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철학과 불교가 동일한 내용을 갖는다고 봤다. 쇼펜하우어는 무엇보다도 불교가 고통의 원인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마음에 대한 철저한 성찰에 입각해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심지어 쇼펜하우어는 “그리스도교를 아직 유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종교”라고까지 평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권력과 명예, 돈을 좇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서슬이 퍼런 권력을 추구한들, 고귀한 명예를 얻는 들, 돈방석에 앉는 들 결국은 허무한 잿더미로 사라진다. 불교의 의식은 대부분 수행이다. 수행은 마음을 닦아 자기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평생 선방에만 앉아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는 안 된다. 불교 수행은 곧 지혜행과 자비행, 수신행과 정토구현행이 치우침 없이 조화롭게 실천되어야 한다. 따라서 5월 15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우리 삶의 방향성을 찾아보도록 노력하자.
/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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