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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5월 27일
호스피스 병원에 근무하면서 3가지 소원이 있었다. 이곳에서 첫째 일가친척을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과 둘째 내가 다니는 교인들을 만나지 않는 것과 셋째 동창생이나 가까운 친구를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나름의 바람이 있었다. 잘 지켜지는가 싶더니 3년째 겨울에 들 어서 소망은 깨트러지고 말았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4인실 병실에 신 환이 들어와 있는데 처음에 몰라보았다. 자리에 앉아 침상 명찰을 보 니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이름과 같다. 머리는 백발노인인데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동창생 친구다. 칠순이 된 폐암 환자다. 친구가 잠에서 깨어나자 간단히 수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며 친구는 절망을 하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친구가 있어 잘 도와줄 터인데 하며 좋게 생각할 일인데 친구는 나를 통하여 병원에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친구는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시 골 태생이며 성격도 비슷했고 성적까지도 비슷한 처지였다. 그러한 점 에서 나는 남보다 친구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친구는 달랐다. 나에게 세 가지를 부탁한다는 것이다. 꼭 지켜달라는 것이다. 첫째 는 아내에 관하여 묻지를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고 둘째는 담배 피우 는 것에 말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셋째는 친구 누구에게도 자 신이 암으로 병원에 있다는 것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어찌 했던 환자의 부탁이니 내가 알았다고 했다. 한 마디로 자신에 대해 서, 자신의 신상을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그러려니 했다.
친구는 췌장암 말기로 병색이 깊었다. 와상환자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는 정도였다. 수액 영양주사로 생 명을 유지하고 있었고 대소변은 기저귀로 처리하고 있었다. 일찍이 병 원에 들어왔으면 증상도 좋아지고 기쁜 마음으로 병원생활을 할 터인 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친구는 속에서 불이 타오르는지 혈당 수치 가 높다고 하는 데에도 차디찬 콜라를 마셔댔다. 담배를 끊지 못하고 줄담배로 피웠다. 담당의사 선생님도 절제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 며 콜라 마시는 것과 담배 피우는 것을 허락하였다는 것이다. 담배 를 피우러 나가자고 하면 휠체어에 태워 겨울이라 밖이 추우니까 담 요로 둘둘 말다시피 하여 나갔는데 한번 나가면 참았던 담배를 서너 개비씩 연속적으로 피워대는 것이었다. 도톰한 입술로 담배를 그렇게 맛있게 빨아대는 모습은 영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머리 속에는 친구를 위해 몇 번이나 이렇게 밖에 나올 수 있을런지 숫자를 헤아리 고 있었다. 친구는 그 몹쓸 니코틴을 흠뻑 마시고 난 뒤에야 이제 살 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친구와 흡연구역에서 대화다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친구가 대장의 연동장애로 대변을 며칠 동안 보지 못해 힘들어 했 다 한다. 관장을 하여도 효과가 없던 아침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대변은 나오지 아니하고 아랫배는 뒤틀려 식은 땀을 흘리며 간호사와 보조활동인력에게 소리소리 지르고 짜증을 있 는 대로 내었다 한다. 보다 못한 보조활동인력 선생님 한 분이 대변이 막창에 차 있어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비닐장갑 두 겹을 끼고 핑 거를 하였다 한다. 손가락을 항문에 넣어 단단하게 굳은 덩어리를 굴 려 파내었다 한다. 10여 덩어리를 빼내니 환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안정이 되더란다. 친구의 말이 걸작이다. 선생님들 가운데 마음에 차 지 않아 미워하는 마음을 가졌었는데 막혔던 대변을 처리하여 주니 달리 보이더라며 미워했던 미음을 거두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작 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며, 죽어갈 때야 철이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친구는 죽음에 대하여 일찍이 체념을 하였다. 한번 태어나면 가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조금 빠를 뿐이지 미련은 없다고 했다. “지 금 생각해 보니 좋은 세상인데 친구야!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 같아?”라고 묻는 것이었다. “하나님한테 맡긴다 해 놓고서 왜 묻는데?” “아무래도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 “그런 소리 하지 마, 내가 볼 때는 적어도 3개월은 남아 있으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덧붙여 “앞산이 지금은 갈매 빛이지만 보름만 지나면 개나리가 피고, 진달 래가 피고, 목련이 필거야. 산이 환해지면 마음도 밝아지고 몸도 좋 아질 것이다.” 라고 애써 위로를 해 주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용히 맞이하고 싶다더니 통증도 비교적 적은 듯했다. 침대를 세워 등을 대고 앉아있는 것이 편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남은 하루를 한 달처럼, 하루를 일 년처럼, 아니 10년처럼 의미가 있고 행복하게 보내자 했다. 웃으면서 그러자고 했는데 친구 는 예언을 맞추기나 하듯이 딱 1개월이 되던 날 아침에 갔다. 그동안 통증으로 많이 시달렸는데도 마지막 모습은 잠자듯이 평온한 얼굴 이었다. 병상생활을 하면서 찾아와 간병을 해주던 두 딸과 아들 외에 는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였었다. 아내와는 오래전부터 별거를 한다 하였고 형제도 여럿인데 누님 한 분만 오셨었다. 죽음과 싸우면서 얼 마나 외로웠을까?
친구가 가기 전전날에 딸한테 부탁하여 아빠가 얼마 남지 않았으 니 엄마가 다녀갔으면 좋겠다하여 찾아와 화해 아닌 만남을 이루었 다.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었던 고향 남동생과도 형이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하여 만남의 시간을 가졌고 전날에는 서울에 사는 어릴 적 친 구 세 명에게도 연결이 되어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 친구는 너무 외롭지 않게 말로 못한 마음을 눈빛으 로나마 화해와 용서를 하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친구 간지 3개월쯤 되던 날에 친구 아내를 찻집에서 만났다. 친구가 살던 집에 들어와 혼자 지내고 있다 하였다. 덧붙여 딸들과 아들이 이따금씩 찾아오니 외롭진 않다고 했다.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 방의 기업체 간부로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만나지 못해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친구가 동창회 모임에 참석하지를 않아 더욱 그러했다. 친구가 성실하고 열성적인데다가 아이디어가 좋아 회사 임원까지 올 라갔는데 직선적인 면이 있어 그 이상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퇴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 일이 친구에게 자존심이 크게 상했을 것이라 한다. 퇴사 이후 친구는 밥만 먹으면 서재에 들어가 두문불출 발명품을 만든다며 나오지 않고 몰두했다고 한다. 누구와 만나지도 않고 혼자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사람이 이상해져 가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자신이 바람을 피운다며 집을 나가 라고 하였다 한다. 무조건 나가라고 하여 견디지 못하고 따로 나와 방 을 얻어 5년쯤 살았는데 남편이 암이 되어 고생을 하면서도 집에 들 어오지 못하게 하여 혼자 살았다 한다. 그리고 아들이 엄마 편을 든 다고 하여 아들도 미워했다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친구의 가정이 그림으로 그려진다. 그로 인해 친구 부인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였 을까? 애써 웃음 짓는 눈가의 잔주름이 마음고생을 대변해 주는 듯 하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소한 일들로, 사소한 다툼으로 오해하고 미 워하고, 등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알고 보면 어리석은 일이고 후 회 막급한 일인데도 소인배 고집으로, 알량한 자존심으로 자신을 망 치기도 한다. 일마다 때마다 용서하고 화해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붙잡아 주고.

40년 만인가 호스피스병원에서
고등학교 동창친구를 만났다
그리 좋았던 풍채는 어디로 가고
희끗희끗한 머리에 주름 잡힌 얼굴
어찌된 일인가? 이곳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서투르고 낯선 인사에 만사가 교차된다
담배가 좋아 그리도 줄담배 피워대더니
폐암이 되어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어느 날 다정스럽게 부르더니
생을 체념諦念이나 달관達觀한 듯이
친구야!
이제 부러울 것도, 두려울 것 하나 없다
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머니 무릎 베고 잠들고 싶다” 했다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다” 했다

두 달 동안 밥 한술 뜨지 못하고
빈속에 불울 지르려 하는지
몹쓸 놈의 담배와 콜라만을 즐기다가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영양제와 수액으로 견뎌내더니
하늘나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혼자가 좋다더니 그리 혼자 갔다
언제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도란도란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하늘 길은 멀고 갈 길이 바쁘다

/김영진
시인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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