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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동수
시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인식에도 단계가 있어 현상과 본질, 가시와 불가시를 넘나드는 직관과 통찰의 사유로 저마다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들은 상징이나 비유로 우리를 둘러 싼 세계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독자에게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일깨우곤 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이번에 응모한 1350편의 시 중에서 박미현, 이영란, 권구상, 채종성 네 분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박미현의 「종이」는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위서 ‘쓸모를 기다리는 ~ 백지처럼’ 생에 대한 치열한 삶의 자세가 밀도 있게 묘사되어 돋보였고, 이영란의 「가장家長」 은 일가를 꾸려가는 가장의 무게를 골목 전신주에 비유하여 오버랩 시켜가는 시적 기교가 인상적이었다.
권구상의 「꼬인 그림자」 또한 ‘주차장 바닥에 늘어진 ~ 전기차 충전 케이블에 ~빛이 닿으면 ~ 꼬였다 풀렸다 / 조용히 춤을 추는 도시의 리듬’이라는 결구가 매혹적이었다. 위 세 편 모두 안정된 구조와 작품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있었지만 시상을 또 다른 차원으로 전환하지 못한 채 종결되어 아쉬웠다.
이에 비해 채종성의 「녹슨 못의 진술」은 한 채의 집을 지키기 위해 벽과 나무와 못이 서로 협력하는 양자 역학적 초월 사유를 바탕으로 무심히 지나친 일상에서 형이상학적 아포리즘을 이끌어 내고 있어 즐거웠다. 결구에 ‘말하지 않는 것들이~ 먼저 흔들린다.’, ‘다만 빠져나온 몸으로/ 집의 나이를 증언할 뿐이다’와 같은 절제된 서정의 파동이 선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