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생의 지도를 펼치다: 『연금술사』가 들려준 인생 수업
- 나의 보물은 지금 이순간을 살아내는 용기였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1월 28일
이택규
전)편집위원회 부위원장
책장을 넘기던 손이 멈춘다. 페이지 위에 아롱거리는 것은 글자가 아니라, 스물일곱 해 전 고등학교 교실 창문으로 스며들던 봄햇살이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처음 만난 순간, 그때의 필자는 꿈꾸는 소년 산티아고처럼, ‘보물’이란 명확한 목표와 화려한 성취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희미한 감정의 그림자만 남긴 채, 책의 내용은 거의 잊혀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5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손에 든 이 책을 끝내기가 참 어렵다. 평소라면 일주일이면 충분할 텐데, 벌써 한 달이 넘도록 읽다가 덮고, 덮었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하고 있다. 마치 책이 아니라, 오랜 친구와 술 한 잔 기울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고개를 들 때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평범한 금강 상류의 강줄기가 산티아고가 마주한 끝없는 사막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이 ‘지천명(知天命)’이라는 나이에 이 책이 필자에게 선사하는 첫 번째 울림이었다. “가장 위대한 모험은 외부로의 여정이 아니라, 이미 머무르고 있는 내부 세계에 대한 탐험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다시 읽으니, 이야기의 뼈대보다 그 사이를 채우는 문장들이 심장을 두드린다. 『연금술사』는 한 소년 산티아고의 이야기다. 양치기 소년이었던 그는 보물을 꿈꾸며 집을 떠난다. 사막을 건너며 사기꾼을 만나고, 사랑을 만나고, 두려움과 불안을 마주한다. 그 여정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안전한 현실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로 나아갈 것인가. 영적인 안내자 멜키세덱 왕은 말한다. “네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네 마음은 늘 알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 말이 그저 낭만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인생의 희로애락을 수십 년간 경험한 지금, 이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고되고도 진실된 길잡이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직장 생활의 고단함, 가족을 부양하는 무게, 그리고 그 세월이 남기는 흔적들…. 그 긴 여정 속에서 나 역시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 안전한 현실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하지만 내가 원하는 길로 나아갈 것인가. 이 책은 또 묻는다. “네 보물은 어디 있는가?”라고. 예전 같았으면 성취, 결과, 숫자로 보이는 성공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만남에서는 조금 다른 답을 찾게 되었다. 나의 삶의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들, 지역사회와 함께한 순간들, 실패와 도전,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 선택들. 이 모든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보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보물은 어쩌면 ‘나의 삶, 그 자체’이다. 산티아고가 찾는 진정한 보물은, 그가 이집트로 향하는 길에서 맞닥뜨린 사막에서 바람을 배우고, 전쟁의 위기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하는 법을 배운 그 ‘과정 전체’였다. 우리는 모두 멀리 있는 줄 알았던 보물을 찾으러 떠났다가, 알고 보니 그 보물은 여정을 결심한 그 순간부터 이미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이제 필자에게 두 번째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필자는 얼마 전, 새로운 꿈을 위해 대학원 입학에 지원했다. 주변에서는 ‘나이값 좀 하라’는 농담 섞인 충고도 건넸다. 하지만 『연금술사』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음을 깊이 깨닫는다.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으로 인해 닥칠 결과들 때문이다.” 두려움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순간 공부를 시작하려는 결심과, 그 첫 페이지를 넘기는 나의 몸짓이다. 이 새로운 시작을 필자는 ‘개인의 전설(Personal Legend)’을 향한 하나의 ‘징조(sign)’로 받아들인다. 젊은 시절의 학문이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돌진이었다면, 이번 도전은 삶이라는 넓은 바다에 나침반 하나를 더 장만하는 일이다. 내 안에 쌓인 50년의 경험과 통찰을, 학문과 연금술하듯 결합시킬 수 있는 소중한 원료로 삼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도 묻고 싶다. 서재 구석에 잠들어 있는 ‘그 책’이 있지 않은가? 한때 여러분을 울렸거나 설레게 했던 책, 혹은 도전해 보려다 중도에 덮어버린 그 책 말이다. 그 책을 다시 펼쳐보자. 책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책을 읽는 ‘당신’은 수 많은 사막과 파도를 건너왔다.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당신의 심장을 두드릴 것이다. 『연금술사』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너의 첫 번째 전설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실히 살아온 것이었다. 이제 시작할 두 번째 전설은, 그 모든 것을 경험한 너 자신을 가장 순수한 호기심과 기쁨으로 다시 채우는 일이다.” 지천명(知天命)이 된 지금, 필자는 다시 한번 모래언덕을 걷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젊은 날의 조급함이 아니라, 발아래 모래의 온기를 느끼며 천천히 걷고자 한다. 지난 모든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 지금 느끼는 이 따뜻함이 두 번째 인생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의 첫걸음이 바로 오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여는 지금 이 순간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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