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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고라니야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2월 01일
형효순 수필가

고라니야.
참다 참다 오늘은 진심으로 너에게 꼭 할 말이 있어. 너도 한 번 생각을 해 보렴 웬만하면 그냥 함께 나눠 먹고 살려고 했어. 나는 네가 싫거나 미운적도 없고 어쩌다 올가미에 걸린 너희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파 잠도 잘 오지 않았지. 많이 먹겠다고 올무를 놓는 사람들을 비난했어. 그냥 같이 살면 될 텐데 하고, 근데 고라니야. 요사이 그 사람들 마음이 이해가 된단다.
요즘 날씨가 폭염인거 너도 알지? 그리고 지금 사람들은 산에 가지 않는단다. 숲이 무성하고 아무도 너의 생활 근거지를 침범 하는 사람들도 없어. 그렇다면 먹을 것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리 욕심을 부리니. 사실 콩잎이나 고구마 순이 너무 무성하면 알곡이 차질 않아 적당하게 순 집기를 하니 네가 처음 뜯어 먹을 때는 그냥 봐 주었지. 어쩌면 내 일을 대신 해주는 것 같아 고맙기까지 했어. 그런데 한번으로 끝내면 안 될까? 두 번 세 번 뜯어먹으면 콩도 고구마도 먹지 못해서 말이야.
오늘은 장마에 무성한 풀을 매면서 네 발자국을 보고 괘씸했어. 콩 꽃이 하얗게 일었는데 그렇게 모지락스럽게 먹으면 어떻게 하니. 너도 알지 않니 봄에 심었을 때 비둘기라는 녀석이 한 알 도 남기지 않고 헤쳐 먹기 때문에 고랑마다 부직포로 덮었다는 것을.
가뭄에 이리 뒤뚱 저리 뒤뚱 헐떡거리며 열심히 물을 퍼다 줘서 콩이 나고 고구마 순이 살아났다는 것을 보았을 것이야. 물론 인간이 먹기 위해 심지만 콩이나 고구마는 열매를 맺고 알이 들어차, 먹거리로 쓰임이 된다는 것을 최대의 기쁨일거라 생각한단다. 그래서 우리는 정성스럽게 가꾸는 것이고.
생각해 봐라. 우리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니? 우리 동네는 평균 나이 70살 노인들이란다. 다른 대책이 없어 그냥 저냥 평생 살아 온대로 씨 뿌리고 거두어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 태어나서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며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니. 농민은 언제나 정부의 관심 밖에 내몰려 항상 최소한의 혜택일지라도 할 수 없이 받아들이며, 그래도 순박한 심성을 잃지 않으려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산다는 것 말이다.
그럼 양심껏 고라니 너도 적당하게 상부상조하면 좋지 않겠니? 네가 아니어도 농민은 하늘과 묵갈림 하는 거나 마찬 가지야. 가뭄에 시달리는 곡식을 보는 마음, 홍수에 쓸려가는 곡식들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고 안타까운지 모르지? 그런데 너마저 그러기니. 싹둑 잘라진 콩 포기를 보면서 오늘은 참 많이 야속 했어. 밭을 매어주자니 재미가 없고 그냥두자니 풀밭으로 변 할 것이고, 이틀 째 풀을 매면서 허리가 무지 무지 아팠단다. 제발 산속의 먹이로 만족하고 그만 오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허수아비에 울타리까지 쳐놓아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빠르게 알고 들어와 되는대로 뜯어 먹는 네가 정말 밉살스럽지만 이번까지만 참아 준다. 길목에 분명 올가미 쳐 놓을 거다. 네가 어디로 들어왔다 나가는지 다 알고 있거든.
그러니 고라니야. 다시 한 번 부탁한다. 제발 다시 오지 말거라. 아직은 우리 영감님한테 네 소행을 알리지 않았어. 안다면 당장 덫을 놓고 기다릴지 몰라. 올가미에 걸린 네 두려운 눈빛은 보고 싶지 않아. 알았지?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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