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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마음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2월 22일
형효순 수필가

“글쎄 나를 좀 내버려 둬라”.
전화 받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여름엔 활동하기 좋으니 혼자 있고 추운 겨울에는 어떻게 하던지 하는 내용 같았다. 전화를 끊고 팔뚝으로 눈가를 훔쳤다. 경로석 자리에 오늘따라 아무도 앉지 않아 더욱 쓸쓸한 얼굴이 나의 미래이기도 하다.
내가 앉은 자리와 경로석 사이는 불과 서너 걸음, 사람들이 구분지어 놓은 일반석과 경로석 사이를 어느새 바짝 뒤 쫒고 있다. 요즘은 연배의 노인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나도 저렇게 변하겠지. 저렇게 기운 없이 늙어 갈까 하고.
유행가 가사에 ‘너는 늙어 보았느냐 나는 젊어도 보았다’ 라며 물어보는 구절이 있다. 나이든 사람의 억지다. 아직 늙어보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세월의 야속함을 그렇게 물어보면 뭐라 대답 하겠는가. 젊은 날 시어머님께 숱하게 들었던 말이 있다. ‘너도 나중에 늙어봐라’ 역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는 말들이었다.
아무리 과학적인 방법을 다한대도 아이가 갑자기 늙어질 수 없으며 노인이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인생에는 영원한 젊음도 없고 영원한 노인도 없다. 그런데도 사소한 일로 젊은이와 노인의 대립이 날카로울 때가 많다. 젊은이들은 노인의 고루한 생각이라고 일축해 버리고 노인은 젊은이의 생각이 얕다고 나무라는 충돌이 빈번하다.
지난 촛불집회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태극기 앞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많았고 촛불 앞에서는 젊은이들이 대다수였다. 양분된 마음들이 참 많이 안타까웠다. 부모와 자식의 다른 이념과 사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실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건 집회에 나가보지 못한 나였지만 당시 지하철을 탔는데 그 분위기가 서늘했다.
태극기가 그려진 옷을 입은 보수시민단체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향해 거친 막말을 쏟아놓고 있었다. 행여 젊은이들과 부딪치면 어쩌나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히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참는 젊은이들의 행동에 우리나라 장래가 믿음직했다. 술까지 거나하게 마신 일행들이 내린 뒤에야 지하철 안은 평온해졌다.
어른들이 조금 더 포용하고 타협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조건 야단만 치지 말고. 나이가 들면 쓸데없는 일에 참견도 하지만 너그럽게 품어주지도 못하면서 늙어 서럽다고만 한다면 젊은이들과의 소통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드는 과정은 욕망을 조금씩 버려가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막내 딸 집을 가려면 5호선을 타야 한다. 나는 버스보다 지하철을 좋아하는 편이다. 편리하기도 하지만 구분되어 있는 경노석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나도 국가가 인정한 노인이 되었다. 어느 때 부턴가 슬그머니 경노석 자리에 앉아도 불편하지 않았으니 서글픈 것인지 다행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하필 퇴근시간과 겹쳐 지하철 안은 만원이다.
어제 하루 꼬박 밭을 맸더니 다리가 많이 아프다. 경노석은 빈 좌석이 없고 일반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은 모두가 핸드폰을 보고 있다. 하긴 얼마나 피곤하고 지쳤겠는가. 동정을 바라는 것 같아 젊은이들과 눈을 마주치기가 싫다. 그런데 캐리어가 이리저리 밀려 불편하다.
자꾸만 자리에 앉고 싶어지는 내 마음을 알았을까. 청년이 “할머니 이리 앉으세요” 웃으면서 일어난다. 그런데 왜 할머니라는 말이 그리 귀 섧게 들리는지 늙기는 싫고 도움은 받고 싶은 알다가도 모를 자존심이여.
고려의 학자 우탁이 그랬던가.
‘한손에 막대 들고 또 한손에 가시를 쥐고 늙는 길은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이 제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자리를 양보한 젊은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하얀 이를 고르게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그래 지름길을 무엇으로 막으랴. 얼른 맞이하면 되지.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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