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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꽃 - 박향연
억새는 꽃이 아닌 줄 안다 마른 들판에서 산에서 은빛물결로 피어난다 갈대는 꽃이 아닌 줄 안다 물가에서 강가에서 노을처럼 물든다 어제는 물가에서 오늘은 빈 들에서 바람따라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
소리 낮춰 울음 삼키는 억새 끝내 소리를 내는 마른 갈대
시린 가을하늘 저 아득함 뒤로 바람이 불어오면
서걱서걱 샤르르샤르르 솨아악 말 못할 사연을 흘려 보낸다 밤의 가운데 짐승 소리만 울러퍼지고 억새는 숨을 죽인다 그리움이 알알이 맺히면 서로 쓰다듬고 부비고 끌어안는다 억새는 하얀 웃음꽃을 피우며 찬란한 아침을 맞는다
□ 작가의 말 □
무리지어 모여있던 명성산의 억새를 잊을 수가 없다. 하얀 솜털이 기대어 노래하는 모습에서 평온하고 화목함이 느껴졌다. 이대로 끝없이 걸어가면 서방정토가 펼쳐질까? 그 속을 걷는 나도 억새와 한 몸이 된다. 바람따라 흔들릴 때는 은빛 파도가 되고 은하수가 되어 빛난다. 비탈진 산 중턱에 하얀 억새 물결은 파도로 일렁이다가 눈꽃으로 피어난다. 우는 듯, 속삭이는 듯, 귀 기울이면 한 편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만의 밀어를…. 혼자 일 때보다 함께일 때 더 빛을 발하는 억새 군단의 동행이 아름답다. 유연하지만 쉽게 부러지지 않는 강인함, 가을의 성정을 닮았다. 억새는 하얀 그리움을 이고지고 품는다. 거품같이 일어 더하고 나눈다. 꽁꽁 얼어 거울 같은 강가에 서 있는 갈대 곁을 스치면 나도 덩달아 더 살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다. 마른 산등성 짐승 소리가 들리는 듯, 사그락 사그락 억새 바람 속을 걸으며 내 가는 길이 맞는지, 돌아보며 걷고 또 돌아보며 걷는다. 어떤 이는 억새풀이라 부르고 갈대풀이라고 부른다. 이왕이면 꽃으로 봐 주면 좋겠다. 억새꽃, 갈대꽃이 피면 가을이 더 깊어진다. 더 원숙해진다. 더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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