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지를 다녀와서 - 이선옥
고고하고 찬란했던 서라벌의 정취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듯 풍우가 지나간 이만 평의 푸른 잔디 위에는 눈부신 은 보석의 물결이 일렁이는데 역사의 잔해가 된 주춧돌만이 모진 풍상 이겨내며 세월의 문을 지키고 있다 천사 같은 뭉게구름은 몽골족의 간악한 횡포를 비웃듯 떼를 지어 수군거리고 한 줄기 햇살은 잠자는 세월을 깨우듯 눈이 부시다 솔거의 벽화에 속아 떨어진 새의 넋은 그래도 우리 일행을 향수로 반겨 주는데 애절한 이 마음 못내 아쉬움이 찐하다 아! 비록 성전은 무너졌지만 거룩한 님의 말씀은 계율이 되고 옛 선사님의 실천 수행은 거울이 되어 있구나 황룡사지를 다녀간 수행자들의 가슴 가슴으로 뜨겁게 메아리 되어 정의로움이 외면당하는 진흙밭에 연꽃이 피어나기를 간절히 염원해 본다
□ 작가의 말 □
한 달에 한 번씩 이어지는 성지순례 길 위에서 경주 황룡사지를 찾았다. 특별한 기대 없이 나선 길이었지만, 막상 그 자리에 서니 마음은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 위로 햇살이 내려앉아 은빛으로 일렁이고, 오래전 사라진 성전의 숨결이 바람에 실려 오는 듯했다.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황룡사지의 역사와 의미는 무너진 터 위에 다시 시간을 쌓아 올렸고,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 깊은 곳에서 신심으로 피어올랐다. 찬란했던 서라벌의 세월과 묵묵히 자리를 지켜 온 주춧돌을 바라보며, 지나간 역사와 지금의 나 자신을 함께 돌아보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도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아, 결국 그날의 떨림과 감사한 마음을 시로 옮기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