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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본 거야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10월 22일
형효순 수필가

“그만 가 봐라”
늘 그렇듯이 어머니 음성은 힘이 없고 어눌했다. 그리고는 말이 없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표정도 눈빛도 살아있지 못한 어머니 얼굴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지난 번 백세 잔치 기념사진을 찍을 때는 약간의 미소를 짓기도 하셨는데 그때뿐, 언제나 중얼거리듯 나 혼잣말을 하고 오는 날이 대부분이다. 무표정한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체한 가슴이 된다.
오늘은 볕이 좋아 요양원 잔디밭으로 모시고 나왔다. 저만큼 당신이 살았던 천황산봉우리가 지척으로 보이는데 이젠 그곳조차 바라보지 않는다. 앞산에 나물을 캐는 할머니가 부지런하다. 젊은 날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 있다
입덧이 한참일 때 친정집에 갔다. 약산이 봄빛에 푸르렀다. 쌉싸름한 산나물이 너무 먹고 싶었다. 어머니와 효은등 아버님 산소 가까이 산나물을 뜯으러 갔다. 어머니는 통통한 찔레순을 꺾어 주기도 하고 딱주를 캐어 껍질을 벗겨 주면서 산 꿩이 꿩꿩 우는 산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취나물, 도라지, 미역취, 삽주나물, 원추리를 뜯어 담으면서 어머니는 산등성이를 넘어 가셨는데 나는 햇빛이 황금 부챗살처럼 비춰 드는 소나무 숲 사이에서 자리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 그곳에서 듣게 된 아름다운 솔바람소리를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물결이 철썩이듯, 때로는 수 만 마리 말들이 달려 폭풍이 몰아치듯, 청량한 향기를 뿜어내며 솔숲은 기막힌 연주회를 열었다. 감미로운 송풍연주에 취해 아주 편안하고 달콤한 잠에 빠져 있었나 보다.
“헤순아! 헤순아! 아이고! 헤순아!”
절박한 어머니의 고함 소리에 깜짝 놀라 깨서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렸지만 산속에서 쉽게 만날 수 없었다. 한참 뒤에야 산등성이에서 마주친 우리는 붙잡고 얼싸안았다. 어머니는 뒤 따라오던 내가 보이지 않아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이 없자 산짐승에게 해코지 당한 줄 알고 하늘이 노래 졌단다.
나 또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너무 놀랐다. 산나물은 사방으로 흩어져 없어졌지만 손을 꼭 잡고 산을 내려오면서 웃고 또 웃고 그랬다.
그처럼 산이 우렁우렁 할 만큼 큰 목소리를 가진 어머니가 자꾸만 말을 잊어가고 있다. 잘 들리지 않아선지 말하기가 힘들어선지 몇 번을 물어보면 고개만 끄덕이거나 흔들거나 그럴 뿐이다.
왜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했던 젊은 날들이 무조건 힘들다고 생각했을까. 넉넉하지 못한 집 사정으로 학업을 포기하면서 찾아든 절망감, 그렇다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를 의지하고 사시는 어머니께 어린 조카들과 동생들을 맡겨두고 집을 떠날 수도 없는 막막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절망했었다. 어머니는 내게 최선을 다하셨지만 나는 살갑지 못한 딸이었다. 기껏 24년 같이 살았을 뿐인데 도망치듯 결혼을 했다.
때가 지난 뒤에야 어머니와 지난했던 지난날들이 그립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제 어머니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다. 다만 조그만 침대 하나와 한 벌의 환자복이 필요할 뿐이다. 그것조차 벗어놓고 분명 머잖아 나물캐던 효은동 아버님 곁으로 가시겠지.
휠체어를 밀어 승강기 안에서 기다리는 간호사에게 어머니를 돌려보낸다. 어머니는 언제 부턴가 뒤돌아보지 않는다. 잠깐 눈가에 어리는 눈물과 왜소하게 굽어진 얇은 어깨가 흔들리는 것은 아마도 승강기 때문이겠지. 그럼 내가 잘못 본 것일 거야.
오늘따라 왜 그리 쑥국새는 또 그렇게 울어대는지. 차라리 비라도 한 바탕 쏟아졌으면.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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