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개국 전주정도 1121주년기념 학술 및 토론회 개최
후백제 역사문화 새로운 이해와 선양방안 모색
송효철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11월 01일
|
 |
|
| ⓒ e-전라매일 |
| 지난달 30일 후백제선양회가 주관하고, 전주시, 덕진노인복지관, 전라매일신문사,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이 후원하는 후백제 역사문화의 새로운 이해와 선양방안을 모색하는 학술토론회가 덕진노인복지관에서 열렸다. 학술토론회는 후백제 개국과 전주정도 1121주년을 기념하는 일환으로 열렸다. 송화섭 중앙대교수, 곽장근 군산대교수, 조법종 우석대교수, 이형성 전남대교수, 유철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의 학술발표를 바탕으로 후백제 역사문화의 의미와 가치, 고고학으로 찾는 미래전략, 후백제 인식개선과 후백제 역사문화공원 조성, 전주지역 후백제 유적의 조사 현황 등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 주
‘천년왕도 전주’ 전통문화 승화시켜야 과거 통해 전주 내일을 밝히는 길 동참 본 토론회를 주관한 후백제선양회 강회경 회장은 “전주는 천여 년 전 견훤대왕이 이 땅에 후백제를 세운 뒤, 한동안 후삼국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의 집결지였던 왕도였다”고 전제하고 “우리가 찬란했던 지난날에 긍지를 가지고 천년의 세월 속에 묻힌 후백제와 전주의 옛 모습을 원형대로 찾아내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 역사유적을 모아 지역의 전통문화로 승화시켜 나가는 일에 앞장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행사의 배경과 함께 ‘후백제선양회’를 발족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선양회는 그동안 이러한 취지로 지난 2017년 ‘제1회 후백제견훤대왕숭모대제’를 치룬 이후 코로나19라는 팬더믹 상황에서도 지난 10월 15일 제5회 ‘후백제시조 권대왕숭모대제’ 무사히 마쳤다. 강 회장은 이어 “후백제선양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 학술토론회를 마련했다”고 밝히고 “오늘의 고견을 모아 이곳 주민들이 옛 왕도의주인으로서 당당한 글지를 갖는 초석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대회에서 축사에 나선 김승수 전주시장은 “견훤대왕의 꿈은 36만에 끝났지만 그의 꿈은 전주지역 곳곳에 면면히 남아있다”며 “시는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를 구성하고 후백제 기념관 건립, 동고산성 사적 지정 등 후백제 역사복원에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후백제선양회와 함께 역사복원과 재조명에 적극 동참하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함께 동석한 전라북의회 김명지 의원은 축사를 통해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지역사회 전반의 관심이 높아지기 바란다”며 “가려진 후백제의 궤적을 찾아내고 조명하는 작업들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김성주위원장은 “전주에게 있어 후백제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전통을 계승해 오늘을 창조하는 영감의 원천이다”고 밝히고 “후백제를 기리며 전주의 오늘과 내일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길에 함께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
 |
|
| ⓒ e-전라매일 |
| ▲후백제 건국은 우연이 아닌 필연 - 중앙대 송화섭교수 후백제 건국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통일신라 말기에 말세의식이 싹트고 빈번한 구테타로 정치권력이 기울어 졌고, 경제적 착취와 흉년 기근까지 겹쳐 농민반란도 빈번해졌다. 이에 신왕조의 출현을 백성들이 강력하게 요구하게 됐으며 견훤대왕이 필연적으로 후백제를 건국하게 됐다. 역사에 후삼국시대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기록된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해석함에 있어 왜곡 된 점이 많다. 견훤왕과 후백제사가 삼국사기 열전에 편제되면서 철저하게 유린당하였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기록을 한국사학자들이 왜곡 해석하면서 견훤왕은 나쁜왕 후백제는 통일신라와 고려사이에 끼어 있는 나라 정도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역사는 물흐르듯이 흘러 내려가는 것이다’ 만약 통일신라가 멸망하고 후백제가 없었다면 고려가 출현할 수 없었다. 역사학자들이 왜 후삼국시대가 전개 됐는지 정확한 진단도 없이 후백제를 존제감없는 역사로 꾸며 놓았다.
|
 |
|
| ⓒ e-전라매일 |
| ▲후백제 역사발굴은 고고학을 중심으로 이어져야 - 군산대 곽장근 교수 역사책으로 가득찼던 후백제 국립도서관이 화마로 인해 사라짐으로 인해 문헌기록이 거의 없는 왕조가 후백제사다. 그러나 유적과 유물은 후백제 왕도 전주를 중심으로 잘 남아있다. 후백제 역사발굴을 고고학을 중심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전주는 후백제의 도읍으로서 천년고도이다. 견훤왕은 무진주(광주)에서 완산주로 도읍지를 옮긴뒤 나라의 이름을 후백제로 세상에 널리 알리고 백제의 계승과 신라의 타도를 선언했다. 후백제 도성은 기린봉에서 북쪽으로 뻗어내려 인봉리 마당재를 지나 솔대백이에서 서쪽으로 틀어 서낭당이와 반대산을 거쳐 기린대로 동쪽까지 이어졌다. 삼국시대 이후의 왕조들이 대부분 세계문화유산에 그 이름을 올렸는데 후백제의 성곽과 유물들이 남아있고 일부 복원되고 있으므로 이곳을 후백제역사유적지구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서둘러야 한다.
|
 |
|
| ⓒ e-전라매일 |
| ▲후백제 역사문화권 설정의 필요성 -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후백제역사에 대한 후대의 인식개선과 후백제 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어야한다. 후백제의 역사가 남아있는 전주에 후백제를 기억하고 이를 계승한 긍정적 의미의 공간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운 상황이다. 후백제관련 역사문화 강좌와 시민 청소년 대상 교육프로그램, 지역사교재발간, 예술문화프로그램 창작 및 공연 체험행사와 답사 등을 통한 후백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왜곡된 역사상을 바로잡는 일이 시급히 추진되어야 한다. 견훤왕이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본격적인 나라를 연 서기 900년을 기점으로 한 후백제 건국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 요청된다. 먼저 신라사회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롭게 부활한 후백제 건국의 가치와 의미, 후백제왕 견훤의 역사적 성격과 의미 등에 대한 올바른 학술적 연구와 정리를 통해 후삼국의 혼란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과 미래를 제시한 역사적 존재로서의 재정립이 요청된다.
|
 |
|
| ⓒ e-전라매일 |
| ▲역사의 기록은 항상 승자의 편에 - 전남대 이형성 교수 고려시대 편찬된 역사서들은 견훤왕에 대한 균형감을 잃은 기록이 적지않다. 이러한 편파적 평가는 당시 혼란스러운 사회적 정세를 직시하지 못한 것이다.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의 유철 연구원은 왕조로서의 기간이 길지 않아 지역조차 후백제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음을 아쉬워했다. 또한 후백제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없지 않았으나 몇 번의 학술대화나 발굴조사만으로는 후백제의 실체를 밝히기는 미진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진행된 후백제 유적의 조사 현황에 대해 그의 목소리를 따라간 본다.
|
 |
|
| ⓒ e-전라매일 |
| ▲전북도와 전주시에 조사 발굴 예산확보 등 제안 - 본지 홍성일 회장 언론사가 하는 일은 음지에서 후백제 선양을 위해서 일하는 분들을 발굴해 그분들의 활동을 기사화 하는 것이다. 본지는 그간 꾸준히 후백제선양회의 활동 등을 특집으로 기사화 하며 언론으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해왔다. 더불어 전북도와 전주시에 첫째, 관광객을 대상으로 현재까지 발굴 조사된 유적과 유물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책자와 안내판 설치, 둘째, 주기적인 학술세미나와 홍보전시회 개최, 셋째, 정치권과의 협조를 통해 문화재 발굴 및 조사예산 확보를 제안했다. |
송효철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11월 01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