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수 본지 논설위원/명예문학박사
가을빛이 완연해질 무렵, 우리는 다시‘추석’이라는 이름의 문턱에 섰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옅게, 논마다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감나무엔 붉은 감이 주렁주렁하다. 세월이 아무리 빨라도, 이 풍경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붙잡는다. 추석은 단순한 명절이 아니라,‘가을의 심장’이자‘마음의 고향’이다. 옛사람들은 추석을‘가위嘉俳’라 불렀다. 음력 8월 15일, 보름달이 가장 둥글고 밝을 때,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며 조상에게 제를 올리고,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눈다. 이날은 풍요와 나눔, 화합의 상징이다. 정월 보름달이‘희망’을 비춘다면, 추석의 달은‘감사’와‘회귀’를 비춘다고 할 수 있다. 어릴 적, 추석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아이들은 한복을 차려입고, 부모 손을 잡고 고향으로 향했다. 마당에는 송편 찌는 김이 피어오르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날렵한 손놀림으로 반달 모양의 송편을 빚었다. 송편 속의 깨와 콩, 밤과 대추는 그저 재료가 아니라, 한 해의 노고와 기도의 결정체였다.‘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 낳는다’는 말처럼, 음식을 통해 마음을 전하고 운명을 빚어내던 풍속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추석은 다르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넘치고, 귀성 행렬은 마치 이동의식처럼 반복된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사이엔 반가움과 함께 묘한 거리감도 있다. 도시와 시골의 격차, 세대 간의 인식 차이, 빠르게 변하는 가치관이 사람들 간의 거리를 벌려 놓았다. 어떤 이는 명절을‘휴식보다 피로한 의무’로 여기고, 또 어떤 이는‘돌아갈 고향이 없다’고 말한다. 추석이 더 이상‘민족 대이동의 축제’가 아니라,‘도시의 적막한 연휴’가 되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추석의 본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차례상을 차리고, 송편을 빚는 형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자연, 조상과 후손, 개인과 공동체가 서로 연결되는 날이었다. 땅이 주는 곡식에 감사하고, 사람 사이의 정을 확인하며, 삶의 근원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옛 기록을 보면‘신라 시대의 가배嘉俳는 왕이 백성들과 함께 달맞이를 하고, 노래와 춤으로 한 해의 결실을 나누는 축제였다’고 한다. 이때의 추석은‘위아래 없는 나눔의 날’이자,‘모두가 하나 되는 날’이었다. 요즘 우리는 풍요 속에서도 마음은 가난하다. 밥상은 풍성해졌지만, 함께할 사람이 줄었다. 영상통화로 차례를 지내고, 택배로 선물을 보내는 시대에, 추석의 온기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추석의 정신’을 되살려야 할 때이다.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고, 이웃과 나누며,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어느 철학자는‘명절은 인간이 자연의 리듬과 다시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라 했다. 추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