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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꽃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7월 30일
형효순 수필가

할머니가 다리를 다쳤다. 자식 집으로 갔는데 며느리 눈치가 보여 일주일 만에 내려왔다. 거동은 불편하지만 훨씬 마음 편하고 좋다는 말에 모여 있는 할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잘했단다. 지금 부모들은 자식의 도움을 받으며 죽는다는 것을 일찍이 포기 한다고 해야 할까.
어쩌다 노년이 길어졌을까 원망스럽다는 노인들도 많다. 갈 곳은 딱 하나 요양원인데 그 곳도 돈이 없으면 갈 수 없는 세상이 되어 한세상 끝내기가 겁이 난다며 걱정이다.
남성노인정에서 70살은 형님들 잔심부름이 많아 가기 싫었고 여성노인정에서도 밥하고 청소하고 언니들 심부름이 많아 안가면 심심하고 가면 힘들다 했는데 작년부터 도우미 두 분이 있어 마음이 편해졌다 하니 다행이다. 2018년 다음 뉴스에서는 90세 이상 택시 기사가 전국에 237명이라는 통계를 냈다. 농촌에서도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경운기를 어려움 없이 운전 할 만큼 노년은 이미 길어졌다.
많은 나이에 벅찬 일을 반겨 할 것은 아니지만 노년의 준비가 없는 사람은 생각만으로도 어깨가 시릴 수밖에 없다. 배우자의 결별로 생긴 정신적 고독 건강 문제 경제적 여유 없이 특별한 취미를 가지지 않는 노인은 더욱 갈 곳이 없다. 하루를 살아도 사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데 빈껍데기만 남은 현실이 망망할 것 같다.
사실 농촌에서 산다 해도 돈 없이 살 수는 없다. 예전처럼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사는 세상도 아니고, 내야 할 세금은 도시와 다를 바 없다. 돈이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들에게 인기도 없다. 보고 싶어도 다녀가란 말이 목구멍에서 멈춘다.
결혼을 하고 싶은데 자식들이 극구 말려 고민이라는 여든 살 할아버지의 입장이 참 그렇다.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렇다고 무작정 많은 나이에 가정을 다시 꾸린다는 것도 어렵다. 얼마 살지 못하고 배후자가 가버리거나 잘못 만나 전 재산을 날리고 자식들마저 받아주지 않아 더욱 처참한 환경에 놓인 분들이 있는 것을 보면 노인이 된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참 쓸쓸한 일이다.
텅 빈 세상 살아가기가 두렵다는 노인들. 쓸쓸함을 잊으려고 홀로 고향을 찾아왔지만 죽음보다 더 무서운 고독에 하루 살기가 힘들다던 노암동 할아버지도 얼마 전 돌아가셨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무척 후회가 되었다. 말벗을 해드리면 그리 좋아하셨는데.
노인이 되면 살아온 세월들을 정리하고 신체적 죽음을 받아들여 삶의 의미와 가치를 나누는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 정작 남아 있는 삶을 끝내기는 쉽지 않다. 태어나서 죽는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며 생명을 가진 모든 동식물은 언젠가는 그 끝이 있다.
18세기 문인화가 이인상의 병국도病菊圖를 보면 활짝 핀 아름다운 국화가 아닌 시들고 꺾여 쇄락한 국화꽃 그림이다. 인생의 쓸쓸함을 느껴 한동안 그림 앞을 떠나지 못했다. 생을 깊게 생각하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다고 하지만, 영원히 헤어지는 것은 언제나 서툴다. 인생의 가을 깊숙이 들어온 나 또한 한 세상 소풍 끝내고 돌아간다 했던 시인의 말처럼 아직 초연하지 못한다.
“너 꽃 한세상, 나 살아온 한세상, 너나 나나 갈 때가 다 되었구나.”
동백꽃처럼 처연하게 툭 떨어지지도 못하고 벚꽃같이 화사하게 날리지도 못한 채, 제 꽃잎 다 마를 때까지 가지에 매달려 있는 꽃을 바라보며 중얼 거리던 할머니의 흰 머리가 왜 그리 애잔한지...
거울을 본다. 그 안에 주름 가득한 인人꽃 하나 있다. 시들었다고 서러워 말자. 마른 꽃잎 속에 예쁜 꽃씨 품고 있다는 것,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나를 닮은 꽃들이 계속 피어난다는 것도.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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