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9월 14일
유인봉 시인 / 수필가
여유가 생겼다. 워크숍 시작까지 시간 반이나 남았다. 이른 점심을 먹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하나의 산인데 부르는 이름이 여럿이다. 오늘은 치명자산이라 부른다. 천주교 성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한참을 오르다 보면 산허리쯤 천주교 박해로 일곱 사도가 잠들어 있는 묘소와 성당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쪽을 돌아 십자가의 길이 있다. 산에서 내려오니 평화의 전당이 중세풍의 건축 양식을 자랑하며 묵직하게 서 있다. 바람 쐬는 길이란 푯말이 눈에 띈다. 많은 사람이 겨울을 털고 이른 봄기운을 즐기고 있다. 얼굴엔 생기가 돌고 느릿느릿 걷는 발걸음이 나른한 봄 마당을 즐기는 듯하다. 천변의 갯버들이 솜털 같은 꽃눈을 달고, 여린 새순들은 뾰족이 마른 풀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마을 큐레이터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 경험도 없다. 단 한 가지, 매력적일 듯해서 관심이 깊다. 주 3회 12시간을 마을과 행정 조직 중간에서 마을의 활력을 회복시키고 다양한 마을 공동체 사업을 도와주고 지원하는 조정자, 협력자로서 해야 할 역할이다.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민주적 소통과 진행자’라는 주제 아래에 1박 2일 워크숍을 치명자산 기슭에 있는 평화의 전당에서 개최하기로 계획되어 있는 날이다. 평화의 전당을 한 바퀴 둘러본다. 장방형 4층 건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정면과 후면은 각종 미사와 활동을 위한 공간과 세미나실, 식당 등이 배치되어 있다. 양 측면으로는 길게 통로를 따라 쉼과 명상을 함께 할 수 있는 2인실 방이 백여 개 남짓 배치되어 있다. 방 내부에는 침대와 조그만 탁자와 의자가 2인용으로 비치되어 있고 성경책과 필기구 정도가 전부다. 특이한 점은 일반 객실과 달리 시계나 텔레비전, 컴퓨터 자체가 아예 없다는 점이다. 숙박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쉼을 얻으며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마음의 자유와 평안을 찾아가는 수도원 같은 곳이다. 다만, 이용객의 대상에는 제한 없이 개방된 열린 공간이다. 방과 건물을 둘러보면서 마음이 맑아지고 경건하다 못해 엄숙해지는 것을 느끼게 한다. 워크숍의 모든 주제와 내용은 소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프로그램 기획자가 주도하면서 참여자 모두가 매시간 몸짓과 행동으로 학습하고, 느낌의 상호 공유와 토론으로 이어지는 형태이다. 상반된 역할을 통해 느낌을 표현해 보고, 진정한 민주적 소통이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신선하고 색다른 느낌이 들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오후 교육 일정이 마무리되고 참석자 모두가 저녁을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음료와 소주잔을 곁들여 가면서 교제도 하고 낮에 활동에 대한 느낌도 나누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짧은 시간이 아쉬웠는지 숙소로 돌아와서도 각자 방으로 가지 못하고 세미나실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뒤풀이를 좋아하는 친구는 식당에서 마시다 만 소주병을 들고 오기도 했다. 진행팀에서도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준비해 주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에 건물 예배당에는 금요 저녁 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내면에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나의 상식과 생각이 이 자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불편함과 안절부절못하는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다. 거룩한 성전에서 우리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하여 술을 마시며 잡담하고, 성전의 거룩한 미사 분위기를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옆방에서 미사 의식이 진행 중인데 신자 여부를 떠나서 이 무슨 망나니 같은 행동이란 말인가? 소리 없이 자리를 벗어나 숙소로 올라왔다. 동료들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호흡을 두세 번 크게 하고 회개의 기도를 올렸다. 그래도 마음의 불편함이 채 가시지 않아 어느 교회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내려받아 듣기 시작했다. 목사님이 어느 친구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었다. 믿음을 굳게 지키겠다고 술과 여자와 세상 풍속을 멀리하고 오로지 기도와 예배에 관한 전통과 교회 지식에 철저했던 사람이 세속에 어울리며 교회 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친구를 향해 “너는 왜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느냐”고 책망과 비판을 많이 해 온 친구가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었다. 결론인즉 예수쟁이로 산다는 것, 즉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교리적 지식을 충실히 지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내용이었다. 조금 전의 일이 떠오르며 나를 두고 하는 말씀처럼 들렸다. 나의 잘못된 성경적 지식과 생각으로 다른 이들의 행동을 재단하고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속 좁은 생각인가를 생각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낮에 함께했던 역지사지의 역할극을 소통과 관계속에서 바르게 적용하는 지혜를 찾아봐야 하겠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9월 14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