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시인의 눈> 가슴을 찌르며 피는 꽃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06월 04일
|
 |
|
| ⓒ e-전라매일 |
| 시인의 눈은 유별나다. 눈은 똑같은데 엉뚱하다. 남다른 것은 덩굴장미를 보면서도 나는 가시를 본다. 또 맛있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면서 향과 맛에 심취하기보다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어린 소녀의 눈물을 떠올린다. 또 사향고양이의 초점 없는 눈과 축 늘어진 꼬리를 커피잔에 띄운다. 루왁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렇다. 마치 그렇게 해야만 시 한 줄을 건질 수 있다는 듯이 행세한다. 말하자면 내가 그렇게 살면서 생각의 창고에 쌓아둔 어휘를 불러서 시를 창조한다. 행과 연을 짜깁기한다. 사물과 내통을 해야 내가 사물이 되어 나의 마음을 건드린다. 시를 직조하는 것이다. 전주수목원에서 봄볕을 만끽하러 가서도 나의 발길은 엉뚱한 곳으로 간다.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의 가시를 보러 간다. 눈 부릅뜨고 독기를 품은 가시와 대화를 나눈다. 할퀴고 긁히어 생긴 생채기가 위로를 받고 싶은 거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뾰쪽하고 날카로운 가시를 몸통에 둘러메고 살아야 하는 나무의 고통을 듣고 싶어서다. 왜 가시를 몸에서 품어낼까? 가끔 지친 몸으로 아파트에 들어서면 대추나무가 반겨준다. 아니 대추나무 가지에 서식하고 있는 가시가 아픔이 아픔에 속삭인다. 대추나무와 깊은 대면이 없을 때는 가시가 보이지 않았다.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가 대추나무라는 명찰처럼 매달려 있었다. 언젠가 가지치기를 한 앙상한 대추나무를 보고 달콤한 대추와 가시를 연대해서 생각을 끌고 간 적이 있었다. 얼마나 아픈 상처를 받았기에 자신을 방어하는 모양새가 저토록 절실했을까. 그렇다. 나도 그랬다. 맥없이 타인으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억울한 평가를 받았을 때는 한바탕 격투를 벌이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다. 가시를 지니고 사는 나무들은 한 해를 거르지 않고 꽃이 핀다. 가시를 보고 있노라면 꽃도 열매도 열리지 않을 듯 독기가 있는데 아름다운 꽃을 세상에 내놓는다. 난 괴나리봇짐을 항상 지니고 다닌다. 다니면서 생각을 봇짐에 차곡차곡 넣어두는 습관은 사물과 접근하면서부터 생겼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진리에 가깝다고 한다. 삶을 윤택하게 보유하기 위하여 시는 항상 내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유혹을 한다. 시가 나를 끌고 다닌다.
/이소애 시인 전북시인협회 상임이사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06월 04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