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시인의눈] 詩의 <꼭짓점>에 대하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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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짓점은 정점이다.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이어주는 <꼭지>다. 시작점과 끝점을 포함하고 있는 이미지가 이미지를 부르고 의미가 의미를 부르는 공간이다. 지주를 받쳐주지 않아도 맞물림에 의해 스스로 지탱하는 힘이 내재해 있는 <꼭지>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기, 시 쓰기가 반드시 이런 순서에 의해서 써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 쓰기 할 때, 스스로 기억하고 되새기기 위한 가장 구체적인 행위중 하나이다. 또 하나는 책을 아무리 읽어도 새롭다는 것이고, 인간 본질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정진규 시인은 시 쓰기에 대해서 ‘체험·책 읽기·시 쓰기, 이 세 가지의 꼭짓점을 서로 순화 교응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진다.’라 말하고 있다. 이는 시가 지향하는 자리, 시인이 걸어가야 할 길의 궁극은 우리의 몸속에 있다는 깨달음과 다름없다. 글 쓰는 행위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체험의 세계를 지향하고, 책 읽기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들의 경이로움을 체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책 읽기는 세상에 대한 관념을 바꾸는 <울림>이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세계를 서로 건너다니는 꼭지를 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책 읽기 자체를 의미심장하게 여기는 문화에서 살아왔다. 책 읽기를 통해 충동과 영감, 밀어내는 것과 빨아들이는 것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구스타프 말러는 ‘한 작품의 창작과 탄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낯선 영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하고, 이것이 나중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 말하면서 작품 창작의 무의식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렇다. 모든 위대한 작가의 창작은 바로 영감에서 출발하고, 중심을 이루는 삶의 법칙이며,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라는 미학적 사고관을 보여주고 있다. 『적과 흑』을 쓴 소설가 스탕달은 현재 예술가들의 천재성을 억누르는 대부분의 규칙들은 플라톤이나 칸트의 철학과 비슷하며, 대체로 사고와 환상을 통해 발견되는 수학적 탁상공론이라 거부하고, <취향>이란 말을 원래의 뜻 그대로 미각을 위한 감각이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억제된 이미지가 억압의 표현이며, 풍부한 이미지는 과장을 나타내는 꼭지 형태로 맞물려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여기에서 체험과 읽기, 쓰기를 하나로 이어주는 <꼭짓점>이 따뜻하게 접목되는 꿈을 꾸게 되는 것 아닐까. 책 읽기를 통한 환상적 이미지들이 자연스러운 것과 인공적인 것, 체험된 이미지와 위조된 이미지를 구별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면과 면이 마주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꼭짓점인 것처럼 “저렇게 살지 않았다면?”하는 상상이 詩쓰기에서 다시 깨어난다.
/최영봉 시인 전북시인협회 이사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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