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9월 18일
유인봉 시인 / 수필가
쾌청한 가을 날씨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아내가 먼저 바람을 쐬러 가자고 운을 뗀다. 이 화창한 가을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웠나 보다.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차 머리는 어느새 고향으로 향하고 있다. 추수철이라 일손도 부족할 텐데 처남 과수원이나 형님댁의 소소한 가을걷이를 거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운전대를 잡더니 빠른 길이 아닌 모래재를 넘는 느릿한 옛 길로 방향을 잡는다. 재를 넘기 전 두붓집에서 순두부를 넉넉하게 포장했다. 모처럼 형님댁과 점심을 함께 할 생각이다. 모래재 굽이진 길을 넘어 세동리를 들어선다.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가을이 진갈색으로 물들고 있다. 영화촬영지로 유명세를 치른 후로 늦은 가을16 하루하루가 기적이다 만 되면 추억과 낭만을 즐기려는 방문객이 줄을 잇는 나들이 명소가 되어 버렸다. 사이클 동호인들이 은륜의 바퀴를 굴리며 달리고 행락 객들이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고 있다. 우리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 몇 컷 담아 본다. 분위기 있는 찻집이 있으면 금상첨화인데 아쉬운 대목이다. 고향 들판도 가을 추수가 마무리되어가는 중이다. 오얏재를 오르던 아내가 차를 멈추더니 예비한 사람처럼 바구니를 들고 어서 따라 오라며 앞장을 선다. 밤나무와 굴참나무 있는 곳을 안다는 것이다. 아내는이내풀섶을헤치고바닥에떨어진밤톨과상수리줍기에푹 빠져버렸다.겨울날다람쥐양식은남겨놓아야한다며겨우아내의 손을끌고밤줍기를마무리한다.본가에오르는오얏재날망길은상 지담 뒷길을 지나 수롱골로 이어진다. 비탈진 비포장 오솔길이었는데 지금은 잘 포장된 농로로 조성되어 있다. 양쪽 길섶으로 은빛 억새가 청초한 들국화와 함께 한 폭의 풍경으로 걸려있다. 멀리 남덕유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안산이 구름 몇 조각 머리에 이고 있다. 구불구불한 싸리재를 넘어서면 읍내로 가는 버스 길이 이어진다. 형님댁은고구마수확이한창이다.차소리를듣고형님내외가일손을 멈추고 반갑게 맞이한다. 준비해간 순두부찌개를 끓이고 마당텃밭에서 풋고추를 따 부침개까지 해서 점심상을 차렸다. 점심을 마친 후 모두는 고구마밭으로 향했다. 가을 가뭄 탓에 흙살이 단단하게 굳어 있다. 삼지창과 삽으로 흙을 뒤집을 때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올라오는 고구마 캐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렇지만 전업 농부가 아닌 이상 재미도 잠깐이다. 한두 시간의 노동은 꿀맛처럼 신선하고 재미가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시간이 흐를수록 육체적 피로가 더해지고 힘이 들기 시작하면 재미가 지루한 싫증으로 바뀐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뒷정리해야 한다. 유년에 우리나라 지도같이 생긴 비탈진 밭이 산자락 발등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밭이 제일 사래도 길고 크기 때문에 큰 밭이라 불렀다. 큰 밭이래야 육백 평 남짓이었다. 아버지는 그 밭에 고구마를 주로 심었다. 어떤 해에는 담배 농사로 돌려짓기했다. 해마다 외양간 쇠 거름을 등짐 하여 큰 밭에 뿌리고 쟁기질한 다음 고구마를 심는다. 가을날 무서리가 한두 번 내리면 고구마 수확을 시작한다. 흙 속에서 아기 머리통만이나 한 고구마가 줄기를 타고 주렁주렁 올라 오면 누구 것이 더 큰지 서로 시합하듯 대보기도 했다. 수확한 고구마는 가마니에 담아서 초가집 안방과 뒷방에 들여 통가리를 만들어 겨울을 준비한다. 양식이 귀하던 시절, 고구마는 겨울철 가족들의 점심이나 아이들의 유일한 간식거리였다. 삶은 고구마에는 물김치가 궁합이 맞았다.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시원한 물김치와 삶은 고구마는 그야말로 긴긴밤 간식으로 환상적 궁합이었다. 오늘날에는 귀한 간식으로 대접받는 먹거리이지만, 그 시절은 고구마를 구황작물이라 불렀다. 고구마를 캐다 보면 호미나 쇠스랑에 찍혀서 상처가 나기도 하고 고구마 허리나 발목이 동강 나기도 한다. 그러하기에 캐면서 바로담지 않고 햇볕에 두세 시간 말린 후 상자에 담는다. 햇빛이나 바람에 상처 부위가 아물어야 썩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가 없고 깨끗하게 잘생긴 녀석들은 상자에 가지런히 담아 누군가에게 보낼 생각이다. 크기가 작은 것과 상처 난 것과 울퉁불퉁 못생긴 것은 별도의 상자에 담는다. 아마도 이것은 주인이 두고 먹을 겨울 양식인 것 같다. 가을걷이가 끝난 농산물 중 못생기고 상처 나고 자잘한 것은 으레 주인 몫이다. 좋은 것은 팔거나 남에게 주고, 팔지 못할 비품만 오롯이 주인 차지가 된다.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한 상자라도 선물하려면좋은 것만 골라서 보낸다. 남에게 주는 것이기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농산물은 농부가 1년 내내 들판에서 애지중지 가꿔 온 땀과 눈물의 소산이다. 그 값어치를 단순하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이다.사먹는도시민들도비싸니싸니투정부리지않았으면좋겠다. 농사를 지어 보지 않고서야 어찌 농부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농부는 날마다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다. 풍년이면 값이 하락하고 흉년이면 수입농산물이 대체하여 농부는 잘해야 본전이다. 근래에는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외래 병해충이 많아 농사짓기도 여간 힘들지 않은 일이다. 농사짓는 모습이 누구의 구속도 없이 평화롭고 걱정이 없는 일 같아 보여도, 진짜 농부가 되어 보면 그게 아님을 느낄 것이다. 우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내 생각과 의도와 노력과는 달리 이상기온이나 병해충 자연재해 등 외부적 변수가 많아 참으로 고민과 걱정이 산 넘어 산인 직업이다. 대대손손 고향 산천을 못 떠나고 문전옥답과 농업 농촌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농부란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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