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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으로 가는 고향길 1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9월 29일
정성수 본지 논설위원
명예문학박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 불리는 추석이 다가오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게 흔들린다. 달력에 붉은 표시가 된 긴 연휴를 바라보는 순간, 직장인들은 무거운 어깨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는 기대에 숨을 고르고, 학생들은 모처럼의 자유와 친구들과의 약속, 혹은 고향행 열차에 몸을 싣는 상상을 하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추석은 단순히 휴식의 시간도, 짧은 여행의 기회도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농경 사회에서 풍요를 기리고 감사하는 제의였으며, 동시에 뿌리와 공동체를 확인하는 축제였다.
한가위라는 이름에는 단순한 달맞이 풍경을 넘어,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나누던 기쁨과 화합의 의미가 스며 있다. 곡식이 무르익는 시기에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던 일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정서적 기반이었다. 그렇기에 추석을 앞둔 사람들의 발걸음은 하나의 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인간적 그리움과 사랑의 길이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싶어, 또 누군가는 어린 시절 뛰놀던 마당을 다시 밟고 싶어 길을 나선다. 흩어져 살아가던 형제자매가 한자리에 모이는 이 시간은, 평소에는 자주 표현하지 못한 정을 확인하는 소중한 계기다. 명절이라는 말이 지닌 울림은 바로‘돌아감’에 있다. 집을 향한 길은 곧 마음의 길이며,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뿌리를 다시 떠올린다.
오늘날 우리는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때로는 가족을 잊고, 고향을 잊으며 산다. 하지만 추석이 다가오면, 언제나 잊힌 듯 숨어 있던 그리움이 저절로 깨어난다. 고향 집 마당의 흙냄새, 어머니의 손맛, 아버지의 웃음소리 같은 기억은 추석이 아니면 쉽게 떠올릴 수 없는 특별한 정서다. 그러므로 추석은‘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잊히지 않는 뿌리’를 확인하는 문화적 장치이며,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다.
추석을 앞둔 고속도로의 풍경은 마치 거대한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새벽부터 몰려든 차량들이 줄지어 늘어서고, 도로 위는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로 가득 찬다. 라디오에서는‘서울에서 대전까지 5시간, 부산까지는 10시간 이상 소요됩니다’라는 교통 안내가 흘러나온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은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차 안에 앉아 있는 가족들의 표정을 살피며 웃음을 지으려 애쓴다. 아이들은 지루함을 참지 못해 연신 질문을 쏟아내고, 뒷좌석에서 졸던 어머니는 김밥을 꺼내 아이들 손에 쥐여준다.
그러나, 긴 행렬 속에는 각기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몇 년 만에 부모님을 뵈러 가는 딸, 어린 시절 뛰놀던 친구들과 다시 웃고 싶은 청년, 어머니의 밥상에서 따끈한 된장국 한 숟갈을 떠먹고 싶은 아들까지.…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마음속에 저마다의 고향을 그린다. 논두렁에 서 있던 허수아비, 여름날 강가에서 뛰놀던 기억, 동네 슈퍼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놀던 장면이 문득 되살아난다.
귀성길의 설렘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기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길 위에서 느끼는 작은 순간들 속에 진짜 의미가 숨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사 먹는 어묵 한 꼬치, 김밥 한 줄,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 모금이 유난히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소박한 음식들이, 귀성길 위에서는 고향으로 가는 발걸음을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돌아가는 길’이라는 정서가 그 맛을 더욱 진하게 물들인다.
때로는 차가 너무 막혀 지루하고 답답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웃음을 찾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의 유쾌한 멘트에 차 안이 잠시 웃음으로 물들고, 옆 차에서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 낯선 이들끼리도 순간의 교감을 나눈다. 길 위에 갇혀 있지만, 그 자체가 추석의 특별한 기억이 된다. 세상 어느 화려한 음식과 여행도 귀성길의 소박한 기쁨과는 견줄 수 없다. 귀성길은 고향으로 가는 길이자, 동시에 마음을 돌아보는 길이다.
고향 집 마당에는 부모님이 자식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대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드는 부모의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똑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구부정해진 어깨, 햇볕에 그을려 거칠어진 손, 그리고 흰머리로 뒤덮인 머리칼. 자식들을 향한 사랑은 늘 푸르지만, 몸은 시간이 남긴 흔적을 숨기지 못한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며칠 전부터 장만했다. 가장 좋은 갈비를 고르고, 송편 속을 채울 깨와 꿀을 준비하며, 나물 반찬을 다듬는 손길에는 설렘과 정성이 가득하다. 음식이 차려지는 과정은 단순한 가사 노동이 아니라, 자식들을 향한 마음의 표현이다. 아버지는 마당을 쓸고, 낙엽을 모아 태우며, 대문 앞 돌계단을 깨끗이 닦는다. 허리가 아파 쉬어야 하지만, 자식들이 집에 들어설 때 조금이라도 단정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부모의 이런 손길은 늘 자식들을 향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식들은 그 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치열하고, 각자의 삶은 늘 분주하다.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를 걸지 못하고, 문자 한 통조차 미루다가 명절이 되어야 겨우 얼굴을 내민다. 부모는 그런 자식들을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알 수 없는 아쉬움과 허전함이 숨어 있다.
저녁 무렵, 온 가족이 모여 식탁에 둘러앉으면 집안 가득 따뜻한 기운이 퍼진다. 어머니가 정성껏 만든 갈비찜을 앞에 두고 아이들은 젓가락을 바삐 움직이고, 아버지는 막걸리 몇 잔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러나 문득 고개를 돌려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면, 세월이 남긴 주름과 약해진 손목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자식들은 알게 된다. 자신이 아무리 바쁘다 해도, 부모에게는 단지 함께 밥을 먹고 웃는 시간이 삶의 가장 큰 보람이라는 사실을….
이렇듯 부모의 사랑은 늘 조건 없이 흘러넘친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자식들은 오히려 그 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추석은 그래서 소중하다.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고, 스스로의 무심함을 반성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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