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10월 30일
형효순 수필가
안견의 몽유도원이 이랬을까. 산골짜기 마다 흐르는 폭포수 복사꽃 속에 파묻힌 마을, 화창한 날씨 산 몬당으로 난 길옆 오른쪽으로 파란 고사리들이 융단처럼 올라오고 왼쪽으로는 취나물이 지천으로 파랗게 돋아 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오순도순 앞서거니 뒤서거니 즐거운 시간이었다. 내려오면서 나물을 뜯는 아줌마들에게 가지고 있던 빵과 음료수를 모두 나누어주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님이 갑자기 나물을 팔아오라며 한 보따리를 주셨다. 영문을 모른 채 옆집 형님이랑 다시 산중턱에 자리한 음식점으로 나물을 팔러 올라가야 했다. 내려 올 때와 달리 그 길은 너무 힘이 들었다. 사람들이 다투어 나물을 사주었는데 얼마를 받았는지 기억에 없다. 그리고 돌아서다가 하얀 종이가방이 곁에 있어 형님 것인가 싶어 주워들었다. 열어보니 오만 원 권 지폐가 수없이 들어있다. 아무도 가방에 관심이 없었다. 형님마저 보이지 않았다. 몰래 들고 갈까 누구 것인가 말을 할까 많이 망설이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너무 현실적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파란 나물을 한 보따리 주셨으니 내일 복권을 사볼까. 맑은 폭포수를 보았으니 돈 꿈인가. 지천에 파란 나물들이 깔렸으니 분명 좋은 꿈이겠지. 오만원 권 지폐 다발이 눈에 선했다. 그 정도 돈이면 누구라도 흔들렸을 거야. 꿈속에 나는 잘못된 마음이 아닐 거야. 그러다가 요즘 검은돈을 우연하게 차지하고 갈등하는 ‘99억의 여자’라는 연속극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꿈은 연속극 탓이구먼.
오래전 일이다. 공중전화박스에 전화를 하려고 들어갔다. 박스위에는 낡은 헌 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다. 열어보니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주인을 알 수 있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다. 가방을 들고 주인을 기다렸다. 오거리 전화박스 주위에는 그늘이 없었다. 30분이 지났다. 전화를 하러 들어가는 사람은 있어도 돈을 찾는 사람은 오지 않았다. 돈을 보았던 자신이 후회가 될 만큼 지칠 무렵, 멀리서 나이든 여자가 다급하게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 분은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채가듯 가방을 받아들고 한참을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장날이었으니 그 돈은 소를 판돈이었던지 쌀을 몇 가마 팔았던지. 정말 시원했다.
어느 해 여름, 동생이 마련해준 바닷가 콘도 이용권을 가지고 2박 3일 피서를 갔다. 느긋하게 조개를 잡아 된장국을 끓이고 음악을 들으며 마음껏 즐겼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는데 화단 풀숲에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지갑 속에는 약간의 돈이 들어 있고 신분증은 없었다. 한동안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그리고는 이 돈은 관리소에 맡겨도 주인에게 가지 않을 거라 멋대로 판단하고 차에 기름을 듬뿍 넣고 맛있는 것을 사먹어 버렸다. 보름 전 이사 간 딸집을 찾아 가다가 전화박스에 지갑을 놓고 나와 제법 큰돈을 잃어버린 못된 보상 심리였는지도 모른다. 인생을 바꿀 만큼의 거액도 아니면서 나중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이 제대로 피서도 못하고 고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미안하고 괴로웠다.
올 해도 어김없이 전주 사는 천사님은 거액의 돈을 아무도 모르게 동사무소 앞에 놓고 갔다. 벌써 20년 동안 6억이 넘는 돈을 어려운 사람에게 쓰라고 내놓았는데 작은 돈 앞에 흔들렸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돈이란 소중하고 유혹적이며 배반 적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며 돈으로 열리지 않은 문이 없고, 돈은 바닷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난다는 속담이 있다. 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욕심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요물이기도 하다. 갑자기 얻어진 많은 돈 앞에서 갈등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무심코 썼던 갈등의 어원은 칙과 등나무란다. 칡갈葛에 등나무등藤자로 두 식물 모두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다른 식물을 감아서 자란다. 칡은 다른 식물이나 물체를 왼쪽으로 감아서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면서 자란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함께 자라면 얽히고설켜 둘 다 고사하고 말 것은 당연한 이치, 돈 앞에서 무너지는 자존심 돈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짓는 죄, 우리는 선뜻 그 사람들을 향해 주저 없이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꿈속에서 갈등했던 나는 나의 또 다른 누구였을까. 하루 세끼 먹고 편안하게 잘 자리가 있으면 그 보다 더 한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그릇이 가득차면 더 이상 그릇노릇을 못하고 사람은 관 뚜껑을 덮은 뒤라야 자손과 재산이 쓸데없음을 깨닫게 된다고 했는디.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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