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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와 오이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11월 10일
형효순 수필가

앞마당 그늘진 감나무 아래에서 오이 싹이 저 홀로 올라왔다. 없앨까 놔둘까 망설이다 그냥 두었는데 기특하게 담장까지 쑥쑥 올라왔다. 너 참 대단하다 날마다 칭찬을 해주었더니 이쪽저쪽 노란 꽃을 물고 오이가 열렸다.
칭찬에 기가 살았는지 오이덩쿨이 감나무 가지까지 타고 올라갔다. 너 그러다 잘린다. 그만 올라가거라. 내 경고 무시하더니 결국 남편에게 딱 걸렸다. 남편이 낫을 들고 들어간다. 그늘진 곳에서 인고의 시간으로 살아온 오이 덩굴을 차마 잘라내게 둘 수 없어 의견이 충돌 했다.
“이 마누라야. 오이보다 감이 더 중하지”
“어이구 영감님! 밥상 차려놓고 오이 뚝딱 따 먹는 맛은 어쩌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상처 받는 말까지 주고받았다.
결국 밤에 등을 돌리고 누웠다. 날선 감정에 잡혀 창밖을 내다보니 감나무와 오이 덩굴이 사이좋게 달빛을 받으며 우리를 흉보고 있다.
‘나는 서리가 내릴 때 까지만 있을 것이고, 너도 찬바람이 불면 없어질 텐데, 왜들 저리 야단일까’
‘그러게 사람들은 작은 일에 쓸데없이 참 잘도 싸우지’
그러네. 왜 우린 다투었을까. 그 하찮은 일 때문에 아니지 그 말투 때문이었다. 하긴 그런 말투는 남편만 그랬을까. 나도 마찬가지다. 가끔 딸들에게 남편 흉을 보면 냉정하게 아빠도 말투가 그렇지만 엄마도 결코 만만찮다고, 이편도 저편도 들지 않았었으니까.
딸이 그러지 않던가. ‘달랑 둘이 남아 살면서 둘 중 한 분이라도 없으면 어떻게 농사짓고 살려고 그 나이에 다투시오. 아직도 신혼이요? 서로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이 세상에 누가 제일 중허요’ 어쩌고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엄마가 시집도 안간 딸에게 들어야 할 말이 아닌 것 같아 머쓱해졌다. 하긴 지난번에 넘어져 다리를 삐끗거리자 아침밥도 해주고 병원에도 데려가고 화장실 사용까지 도와주었지 않았던가. 자식에게 하지 못할 말, 남들에게 하지 못할 말 다하면서 내 속에 있는 그 감정이란 놈은 참 줏대가 없다.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하니….
살면서 상대의 장점이 단점보다 많으면 살만한 것이라고 자식들에게 노상 말해 놓고선 어미의 처신이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 쓸쓸하다는 혼술 혼놀 혼식을 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 중하다고 말해야 할까. 사실 중하지 않는 것들이 있을까. 사람의 관계 말고도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바람, 햇볕, 비와 눈, 잡초, 화초, 나무, 물, 우주 공간에 가득 차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소중한 것들임이 분명하다. 내 곁에 있어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미처 느낄 수 없을 뿐이다.
남편과 나처럼 오이가 중한가. 감이 중하냐를 따지다 보면 결국 해답은 없다. 다만 인간의 잣대로 희소가치가 있는 것은 수억에 해당하는 귀중품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것들까지도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한 필수품은 아니지 않은가. 그냥 오늘 하루 내가 필요한 것만큼만 먹고 쓰면 족하리라.
나이든 옆지기의 감정을 긁었던 것이 후회가 되어 창밖을 보니 달님이 빙그레 웃는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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