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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칼럼

김장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11월 26일
유인봉 시인 / 수필가

서리가 내리고 추위가 곧 닥칠 거라는 예보가 뜨면서 주부들의 마음이 바빠졌다. 산골 마을의 김장은 가까운 이웃들과 늘 품앗이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소설과 대설 사이 겨울과 봄에 먹을 김치를 준비하는 꼬박 3일이 걸리는 연중행사다. 옛 어른들이 방안에 쌀가마니 있고, 모퉁이 나뭇가리 한 채와 김장김치 있으면 겨울 한철 나기는 아무 걱정도 없다고 말했다. 김장은 그만큼 겨울을 준비하는 필수 과정이었다. 김장은 마을 이웃 아녀자들이 서로의 일손을 돕는 품앗이였고. 김장 날에는 객지에 있는 자녀들까지 한자리에 모일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입동을 넘어서자 형님댁에서 김장날짜를 택하여 일정을 조정하라는 칠 남매 단톡방에 기별이 왔다. 김장은 삼일을 꼬박 채운다. 요즘은 김장김치를 구매하거나 절임 배추를 사서 버무려 담기만 하는 간편한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통을 고집하는 우리 집안은 모두 모여 함께 김장한다. 그래서 날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 첫날은 김장에 사용할 무와 배추를 뽑고 양념에 사용할 양념 재료를 준비한다.
다음 날에는 배추를 쪼개고 소금물에 배추를 절이고 고춧가루, 마늘, 생강, 액젓 등 김장에 들어갈 양념을 준비하고 마지막 날은 배추를 버무리는 일정이다. 김장에 필요한 재료는 젓갈을 제외하고 모두 큰집인 형님 내외가 직접 재배하고 준비한다. 여느 해처럼 지난해 사용했던 김치 통을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빼고 집을 나선다. 첫 날의준비는형님과형수님이 다 준비해 놓으셨다.
이젠 양념을 준비해야 할 차례다. 슈퍼마켓에서 다듬어진 것을 사면 간단할 일인데도 굳이 텃밭에서 가꾸고 기른 것을 쓴다. 양념 양도 상당하다. 놀고 있는 땅도 많은데 왜 헛돈을 쓰냐는 것이다. 모처럼 모인 고향 집은 칼질하는 도마소리와 여자들의 새살이 가득 채운다. 밤이 깊도록 비좁은 시골집은 그동안 밀렸던 근황들을 나누느라 쉽게 잠들지 못한다.
이른 아침부터 주방이 소란스럽다. 아침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형님이 먼저 일어나 밤새 소금물에 담가두었던 배추를 건진다. 빳빳했던 배추 줄기며 이파리가 숨이 죽어 야들야들해졌다. 두 번이나 물을 갈아가며 헹굼을 마친 배추가 노란 플라스틱 상자에 차곡차곡 담긴다.
이런 날은 날씨도 한몫한다. 공기는 싸늘하지만, 볕살이 좋아 하우스 덕을 보지 않아도 될 성싶다. 창고를 바람막이로 등지고 볕이 잘 드는 쪽으로 터를 잡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포장을 깔고 비닐하우스에서 빙 둘러앉아 양념을 버무리느라 몸이 힘들었다. 경험해 보니 허리가 아프고 다리도 저려서 올해는 허리 높이로 서서 할 수 있는 김장 작업대를 만들기로 했다. 사과 플라스틱 상자를 2단으로겹쳐싸고그위에깨끗한포장을두른다음,그위에깨끗한비닐을 두 겹으로 씌워 작업대를 만들었다. 전주와 서울에 사는 남매 부부들이 김치가 담길 김치 통을 들고 속속 도착한다. 야들야들한 배추 사이마다 양념 속을 골고루 바른다. 여자들의 새살이 길게 이어진다. 모처럼 만나 안부도 묻고 가정마다 쌓여있는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김장 날에 빠질 수 없는 별미가 수육 보쌈이다. 불땀 좋은 가마솥을 걸고 푹 삶아 낸 돼지고기 수육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육즙이 살아 있어 부드러운 고깃살에 김장 김치 한 가닥 걸치고 한입 가득 씹는 그 맛이야말로 쉽게 맛볼 수 없는 맛이다. 사람 손이 무섭다고 산더미 같이 쌓였던 배추며 함지박 한 통 가득했던 양념도 바닥을 드러낸다. 마지막 뒷정리가 끝나고 김장 김치를 실은 차들이 골목을 빠져나간다.
김장으로 한 바탕 시끌벅적했던 고향 집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직도 떠나지 못한 가족들의 웃음과 새살이 여운으로 온기처럼 남아있다. 김장으로 이어지는 가족이라는 핏줄 사이에 느낄 수 있는 끈끈한 정이 이렇게 좋은 것인가 싶다. 옛말에 멀리 있으면 가까이 사는 이웃사촌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정이란 자주 보고 만나고 음식을 나누고 함께 하면 더 돈독해지는가 보다. 같은 김장김치일지라도 가족이 함께 모여 핏줄의 정이란 양념을 한 가지 더했으니 이번겨울 김장김치는 익어갈수록 그 맛이 더 할 것 같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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