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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12월 15일
형효순 수필가

그녀는 당당하다. 모든 일처리가 남자 같다. 요즘 남자, 여자 일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농촌에서는 농기계를 작동하는 일이나 일하는데 필요한 노동의 힘이 여자가 남자를 많이 따라가지 못한 이유에서다. 들로 산으로 밭으로 쉬지 않고 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도무지 지치지 않은 일상을 바라보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녀의 집이 일어서는 기둥이 되었지 싶다.
내가 시집 왔을 때 그녀는 이미 두 아이 엄마로 살고 있었다. 나 보다 훨씬 윗사람인줄 알고 길에서 만나면 공손하게 두 손 모아 “나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했다. 이미 삶의 한 복판에서 움직이는 생기 없는 얼굴은 늘 피로에 지친 모습이었다. 집이 멀어서 잘 마주 하는 일도 드물었다.
어느 날인가 함께 품앗이를 하면서 나와 동갑인 것에 놀랐고 힘든 일상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딸을 낳고 먹을 것이 없어 물을 한 사발 먹었다는 사연은 물론, 그녀의 시집살이는 남편이 있어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단다. 어디론가 갈 수 없어 살아야 했던 그 지독했던 가난귀신은 좀처럼 물러가지 않은 채 힘들게 살 수밖에 없었단다. 먼 산에서 나무를 고개 비틀어지도록 이고 와 물 한 바가지로 어린 자식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자신의 현실이 얼마나 가혹했을까. 그런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남보다 더 일을 하는 것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남의 논을 짓기 위해 그 집일까지 필요이상 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때는 그다지 그녀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너도 나도 살기 바빠 무심했다는 표현이 맞다. 내 앞에 당면한 일들에 그녀를 눈여겨 볼 겨를이 없기도 했으니까.
이제와 마주 앉으면 비로소 그녀의 지난 삶이 대단해 보여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미 오래전부터 잘 살고 있는데 그녀가 안쓰럽게 생각되는 것은 엄마로서는 괜찮았는지 몰라도 여자로서는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다.
남편과 마주서서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으며, 나란히 정답게 걷는 것도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나만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남편을 향한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먼 옆집 여자 얼굴 같았다.
살면서 고마웠던 적이 없고 살뜰한 적이 없었다 하니 가난과 남편은 그녀에게 넘어야 할 큰 산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지난번 수필집을 건넸다. 그녀에게는 내가 쓴 글들이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주고 싶었다. 며칠 후 그녀가 봉투를 건네주었다. 결코 마다 할 수 없는 그녀의 마음을 그냥 받아야 했다. 뭐라 말 할 수 없어 가슴이 뭉클했다. 이 세상 어느 것보다 귀한 돈이었다.
우리는 쌀밥 한 그릇 원 없이 먹어보기를 소망 할 만큼 배고픈 시절을 지나왔다. 그 돈이면 당시 애기를 낳고 미역도 사고 쌀도 팔아 배가 고프지 않을 액수인데, 책으로 자기 이야기를 쓴다면 열권도 더 쓸 사연이 있다는 그녀. 나는 지금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소중한 정을 들고 온 마음 다해 글을 쓸 것임을 절절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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