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동 잘린 나무 - 김정구
남은 것은 흩날리는 환지통의 입자들뿐이고 수천 잎의 숨은 멎고 넓은 그늘의 품은 찢겨나갔다 초록의 염원 대신 질척이는 도시의 매연만 감돌고, 날개를 접은 새의 유골 대신 날 선 기계 소리만 공기를 벤다 정수리 위로 단단한 그림자가 지나간다 오늘도 나는 마른 창에 낀 녹슨 시간을 긁어낸다 이해의 모서리도, 설득의 곡선도 없다 오직 숫자로 기재된 시체만이 모세혈관처럼 차갑게 남는다 나는 아직 수액이 멎는 곳까지 가보지 않았다 다만 먼저 낙엽 진 이들의 시린 발목을 잠깐 보았을 뿐이다 그들의 행군과 다를 게 있을까 처음엔 흐린 습기가 눈시울을 덮고 그 다음은 아예 메말라버린 우기가 올 것이다 늘 거기 있었다고 믿었는데 둥글게 말린 슬픔의 나이테만 선명하다 아이들은 교문을 통과한다 파란 잎의 무게를 견디는 어린 신목(神木) 때 마처 내리는 봄 비가 마중한다
*환지통 : 몸은 없는데 통증만 남아 있는 상태
□ 작가의 말 □
아름드리 나무가 잘려 나간 모습을 보면서 몸은 사라지고 통증만 남은 현대인의 삶을 비유하고자 했다. 성과와 속도만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의 초상도 드러내고자 했다. 현대사회는 초록 내음 대신 매연이, 새소리 대신 쇳소리만이 자연의 상실과 더불어 인간적 삶의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마른 창을 긁는 행위는 숫자와 결과만 남은 현실을 고발하는 동시에, 먼저 떠난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삶의 유한성을 성찰하게 한다. 아이들이 학교로 향하는 모습은 상실 속에서도 생명의 흐름으로, 나무가 베어져도 새순이 돋듯, 미래는 여전히 자라고 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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