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혼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11월 04일
정성수 객원 논설위원/명예문학박사
이혼을 점잖게 말하면‘파경’이라 하고, 폄훼해서 말하면‘찢어졌다’고 한다. 언제는 너 없으면 못 산다고 목을 맺지만, 상황이 불리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신혼 초에는 조석으로 입을 맞추고 외출이라도 할 때면 서로에게 껌딱지다. 그러다가 자식을 낳으면 사랑은 자식에게 기울기 시작해 그 자식이 고등학생쯤 되면 부부는 소 닭 보듯이, 닭 소 보듯이 소원해진다. 남편이 오밤중에 들어와도 그만, 안 들어와도 그만이다, 아내가 화장하건 화장을 지우건 관심이 없다. 그러다가 일이 터지면‘네 탓 내 탓’하며 상대방에게 짜증을 내고 공격한다. 서로에게 불만과 불신이 쌓여 이혼 서류를 내민다. 흔히 말하는 황혼이혼이다. 친구 부부의 이야기다.“신혼 때는 ‘알콩달콩’이 따로 없었다.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면 아내는 잠 못 이루고, 아내가 아프면 남편은 밤새 간호를 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랑의 화살표가 배우자에게서 아이에게로 향했다.“우리 새끼, 우리 새끼”하며 아이 중심으로 모든 생활이 돌아갔다. 남편이 늦게라도 들어오면 아내는 아이가 깰까 봐‘조용히 하라’하고, 아내가 꾸미고 나가도 남편은 신경을 껐다. 오늘 친구들 만나서 늦을 것 같다고 남편이 말하면,‘알아서 해!’라고 아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가 하면 남편이 마음을 고쳐먹고‘오늘 그 옷 잘 어울린다’고 남편이 칭찬하면,‘갑자기 왜 이래? 용돈 떨어졌어?’아내는 삐딱하게 반응했다. 이들 부부 사이는 서로에게 기대했던 관심과 애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남은 건 무관심과 서운함뿐이었다. 많은 부부가“자식들 때문에 참고 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에는 모순이 있다. 정말 자식 때문에 참고 살았다면, 자식들이 떠난 후에는 서로의 삶을 온전히 즐겨야 하는 데 그게 아니다. 현실은 정반대다. 오히려 자식들이 떠난 텅 빈 곳에서 부부 사이의 균열은 더욱 커진다. 서로 마주 앉아 대화할 시간이 많아지니 그동안 쌓아뒀던 불만과 불신이 폭발하는 것이다. “내가 30년 동안 당신 뒷바라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돈 몇 푼 벌어다 주며 갖은 생색 다 냈잖아!”아내가 소리친다.“뭐라고? 그걸 말이라고 해? 당신하고 자식들 때문에 내 청춘 다 바쳤는데,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해?”남편이 맞받아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쌓였던 불만을 쏟아내는 것이다. 그동안의 여러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이 사람과 남은 인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불만은 결국 이혼 서류로 이어진다. 우리 주위에서 노년의 이혼 부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젊은 부부의 이혼은 ‘새 출발’이라는 의미라도 있지만, 황혼이혼은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말은‘이제라도 내 인생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삶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자책하는 슬픈 결론이 된다. 황혼이혼은 재산 분할과 위자료 문제도 복잡하다. 평생을 함께 일궈온 재산을 반으로 나누는 과정은 냉정하고 잔인하다. “어떻게 평생을 함께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배신감과 상실감은 더욱 커진다. 자녀들 역시 혼란스럽다. 부모님의 이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느 쪽 편에 서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 놓인다. 이런 것은 자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심할 때는 자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물론 모든 부부가 황혼이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죽는 날까지 행복하게 해로하는 부부들도 많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이 다를까? 황혼이혼을 피하고 행복한 노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대화의 물꼬’를 다시 트는 것이다. 오랜 결혼 생활 동안 서로의 마음을 닫아버린 채‘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오판은 결국 오해와 불만으로 돌아온다. 자녀 교육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사라진 후라면 특히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이들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배우자의 취미, 건강, 생각에 관해 관심을 두고 “당신은 요즘 무슨 생각해?”, “취미 생활은 잘돼가?”, “오늘 하루는 어땠어?” 와 같은 아주 사소한 질문부터 시작해도 좋다. 주말에 함께 산책하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면 더욱 좋다. “당신이 이럴 때 서운했어.”, “이번 일은 정말 고마워”와 같이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듣는 쪽도 비난하거나 변명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새로운 공동의 목표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그런 것은 젊은 시절의 열정과 패기를 다시 불러일으킨다.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거나, 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권장한다. 예를 들면 함께 텃밭을 가꾸거나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다시 유대감을 형성하고, 서로의 존귀함을 깨닫게 된다. 젊은 시절 함께 꾸었던 꿈을 다시 꺼내 보거나, 은퇴 후라면 작은 카페를 차려 함께 운영하면 잃었던 행복감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소원했던 부부 관계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서로를 너무 편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내 사람인데 뭐 어때?”라는 생각으로 존댓말을 잃고, 당연한 듯 행동한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 한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은 아끼지 말고 자주 표현하고, 배우자의 사생활과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예를 들면 남편은 낚시를 좋아하는데 아내는 낚시를 지루해할 수 있고, 아내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집에서 쉬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시간을 존중해주되,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대를 나의 반쪽’이 아닌 또 다른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황혼이혼은 수십 년의 추억과 관계, 그리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다. 그동안의 삶이 자식들을 위한 희생’이었다고 치부하기보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남은 인생을 함께 행복하게 보내기로 한다면 황혼이혼이라는 비극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장은 젊은 시절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서로에게 다시 사랑을 고백하고, ‘황혼’이라는 따뜻한 색깔로 남은 삶을 예쁘게 채색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부가 인생 끝까지 가는 일만큼 아름다운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1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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