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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날들의 초상肖像(2-8)] 장떡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5월 01일
KBS 다큐멘터리 「한국인의 밥상」을 시청하였다. 2021년 4월 22일 방영분으로 「문학으로 만나다! 작가들의 밥상」이 주제였다. 대하소설 『객주』의 작가 김주영 편에 눈길이 머물렀다. 소설 속 보부상의 밥상에 올랐던 장떡 만드는 과정이 나와서였다.
“된장 고추장을 입맛대로 섞어” 반죽한 후 부추를 숭덩숭덩 썰어 넣었다. 가마솥 밥솥에 김이 오르기 시작하자 뚜껑을 열고 밥 위에 삼베 보자기를 깔았다. 그 위에 반죽을 잘 펴준 다음 한소끔 푹 쪘다. 솥단지에서 뜸들이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오면 밥 내음과 함께 구수한 장떡이 완성되었다. 솥에서 보자기를 들어내 한 김 식힌 후 먹기 좋게 잘라 상에 올렸다. 부추장떡의 재연이었다.
내가 장떡을 맛본 건 얼추 30년 전이었다.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중학교에 근무할 때였는데 토요일 오전까지 일하던 시절이었다. 퇴근 후 전주에 있는 집에까지 가려면 승용차로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출발하기 전 어디에선가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봄날이 무르익어 여름으로 향하던 토요일이었다. 카풀 동료 3명과 한식을 주로 하는 토담식당에 들렀다. 점심 상차림에 특별 서비스라고 장떡을 올렸다. 동글납작한 모양새에 호기심이 일었는데 처음 접하는 음식이어서 망설여졌다.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지져낸 모양인데 이름을 떡이라 하였다. 전이라고 불러야 맞지 않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지난 4월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때 그 동료 3명과 추억의 장소를 방문해 보자며 국도 17번을 달렸다. 잘 뚫린 고속화도로도 있었지만, 우리가 다녔던 옛길을 택했다. 남원 춘향터널을 지나 국도 19번으로 갈아탔다. 앞 밤재를 넘어 구례군 산동면 소재지를 거친 후 온천 관광지가 있는 골짜기에 다다랐다. 산수유, 진달래, 벚꽃이 모두 피어 화급을 다투듯 했다.
요새 봄은 한꺼번에 오는가? 계절은 서서히 바뀌고 꽃은 피는 차례가 있음을 굳게 믿었는데 동시다발로 만개한 봄 풍경에 감탄하다 잠시 멈칫했다. 눈앞에 펼친 현상이 생태계의 알 수 없는 반란이거나 혹시 모를 자연의 경고나 암시는 아닌지 마냥 좋아해도 되는지.
우리가 이곳에서 근무할 무렵 산동면은 온천 개발지였다. 적요의 마을이었던 곳에 날마다 관광차로 실어 나른 관광객이 넘쳤다. 몇 년을 그렇게 성업 중이었는데 수원이 고갈되었던지 이제는 수풀만 더욱 우거져 깊고 창창하였다.
온천수 대신 꽃으로 샤워한 기분으로 골짜기를 돌아 나오다 토담식당을 지났다. 이 집은 한식 백화점처럼 메뉴가 다양했었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서 가끔 들렀는데 차림표에 나왔던 음식은 시장기와 함께 먹어버려 남은 게 없다. 방아잎을 넣어 지져냈다던 장떡만 떠올라 침샘을 자극하였다. 산동에 들른 김에 다시 한 번 그 맛을 음미하고 싶었는데 온천장과 함께 사양길에 들었던지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 허름해진 건물 외벽이 가슴 한쪽을 헛헛하게 훑고 지나갔다. 덩그러니 붙은 낡은 간판이 빈 들에 남은 허수아비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그 맛과 모양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첫맛은 짭짤했다. 다음은 매콤했고 그 두 맛을 감싸는 고소한 여운이 있었다. 지금까지 잊히지 않은 건 배초향이라고도 부르는 방아잎의 독특한 향과 맛이다. 처음엔 화장품에서 나는 냄새 같아 역하기도 했는데 한 젓가락, 두 젓가락 집는 동안 어찌 된 일인지 감칠맛이 났다.
모양은 동글동글하게 빚은 개떡 같기도 했고 색깔은 거무튀튀했다. 묘한 향이 밴 맛이 점심상의 기운을 돋웠다. 가외로 밥을 부르는 맛이었다. 당시 반공일의 점심시간은 시장함으로 온통 쿨렁거렸는데 장떡의 감칠맛과 함께한 식사가 헌 가마니라도 채웠을 만큼 든든하였다. 다만 떡이라는 명칭이 심중에 궁금함으로 남았었는데 마침 TV에서 「문학으로 만나다! 작가들의 밥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김주영 작가는 앞마당 난전에서 보부상들이 싸우듯이 흥정하는 모습을 접했다. 또 청송백자를 중심으로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잠자던 생활을 보았다. 어느 순간 이것은 그들 삶의 현장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조선 후기 보부상의 생생한 이야기 『객주』로 탄생시킨 동기가 되었다.
방문을 열면 마당에 잔뜩 난전을 펼친 보부상들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는 김주영 작가는 청송 한티고개에 남아있는 청송백자 가마터도 찾는다. 오래전 가마가 열리는 ‘점 날’이면 청송백자를 사 가려는 보부상들이 며칠 전부터 진을 치고 기다렸다는 곳. 청송백자를 구워내던 사기장의 후손 김선교 씨를 만나 집안 어른들에게서 전해 들은 당시 가마터의 풍경을 들어보고, 보부상들에게 내줬다는 장떡을 맛본다.
-「문학으로 만나다! 작가들의 밥상」 내레이션 중에서

청송마을 도자기 가마터에 가마 열 때가 되면 봇짐장수와 등짐장수가 모였다. 이때는 축제와도 같았는데 주막에서는 반찬 겸 요깃거리로 장떡도 만들어 줬다.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최불암은 “끼니에는 소홀했던 보부상들, 그들에게 밥상은 고된 삶을 달래주는 쉼표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제일 어려운 사람들이 보부상이었을 겁니다. 짊어져야지 다녀야지.”라고 말하자 소설가 김주영이 응대했다. “보부상들이 장터에 도착하면 배가 많이 고팠을 것 아니에요? 허기가 지겠죠. 숫돌 같은 것을 지고 다녔으니까 곡식 같은 것이 아주 무겁거든. 힘이 많이 드니까 허기가 진다고.”
그 대화를 들으며 보부상만큼 육신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젊은 날 나도 심신이 허기졌던 날, 몇 번인가 장떡으로 위안받았던 기억이 되살았다. 어찌 보면 보잘것없고 초라한 음식일 수 있다. 하지만 식생활의 근간이 되는 장을 재료로 만들어서 밥상에 올리면 반찬이었고 술상에 올리면 안주가 되었으리라. 출출할 때 먹으면 새참도 되었겠다. 지치고 힘겨운 날 찬물에 밥 말아 후루룩 들이킬 때 한 점 떼어먹으면 영혼까지도 소생하였으리라.
오래전에 특이한 향과 맛이 인상 깊었던 음식, 어째서 떡이라고 했을까의 궁금증은 가마솥에서 쪄지는 광경을 보며 해소되었다. 떡처럼 쪄내서 전이 아니고 떡이었을 거라고 수긍하며 이제는 서툴게나마 내 방법으로 조리해 볼 그림을 그려 본다. 고추장과 된장을 나름대로 배합한다. 반죽에는 그때그때 부추나 제철 푸성귀를 섞기도 한다. 야릇한 향기의 방아잎을 더할 수도 있다. 찜솥에 찌기도, 철판에 지져낼 수도 있다. 너무 짜면 건강에 해롭다고 하니 촐촐하게 비 내리는 날, 이 그림대로 슴슴하게나마 장떡을 빚어보리라.

/김숙
전)중등학교교장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5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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